더 플랫폼

The Platform

91.18%
3.4


지금 여기서 감상

현재는 해당 작품을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로 볼 수 있는 곳의 정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감상 가능한 다른 작품을 확인해보시겠어요? 지금 확인하기


작품 정보

0 … 33 … 101 …
30일마다 랜덤으로 레벨이 바뀌는 극한 생존의 수직 감옥 ‘플랫폼’
최상위 레벨 0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음식도 인간성도 바닥나는데…

예고편


감독/출연

가더 가츠테루-우루샤
가더 가츠테루-우루샤
감독
이반 마사구에
이반 마사구에
고렝
조리온 에귈레오
조리온 에귈레오
트리마가시
알렉산드라 마상카이
알렉산드라 마상카이
미히루
안토니아 산 후안
안토니아 산 후안
이모구리
에밀리오 부알레
에밀리오 부알레
바하랏
지하라 랴나
지하라 랴나
말리

리뷰

91.18%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9% 91%
4
더 플랫폼 간만의 매운맛 꽤나 심오한 영화


넷플릭스가 아닌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스크린으로 보는 공간감은 분명 집에서 넷플릭스로 보는 공간감보다 몰입력이 강해서일지도 모르겠다.비위가 약하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진지하고 심오하니 스릴러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관객들 (예를 들면 인비저블 게스트나 큐브같은)에게도 역시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소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꽤나 많은 것을 얻어갈 흥미진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자극적이여서 흥미진진하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지점이 많은 영화가 아닐까 싶은..

인간은 하나의 동물일뿐이라는 인간의 문명이 시작한 이후로부터 내려온 계급사회에 대한 축소판, 사회시스템의 역할과 시민사회 구성원들은 어떤 고민을 해야할까 등등의 물음표를 남겨준다.계층을 은유적으로 다룬 영화는 많으나 더 플랫폼이 내게 다가왔던 이유는 무작위로 매달 바뀌는 층수라는 설정에 있다.내가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위에 있다는 오만함.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333층 안에 속해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 안되기에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장치인 시스템을 통해 복지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싶다. 어쩌면 인간사회에서 감정의 호소와 연대를 외치는 것은 헛된 이상주의일지도 모르겠다.

존롤스의 무지의 장막처럼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불교에서 인간계는 지옥 중 하나라고 했다 인간은 선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내내 해야함이 나는 괴로웠다.
음식 배분을 통해 모두의 식량해결을 꿈꾼 상위층의 등장인물은 좋은 사람이자 현명한 사람이긴 하나 혁명을 성공시키진 못했다.
이는 마르크스의 이상적 이론이 초반 공산주의자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분단된 남북에서도 공산주의를 먼저 받아들인것은 대부분 지식인들이나 사회변화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었다.다만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것은 인간은 악하고 탐욕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배제함으로써 결국은 파라다이스라 주장했던 평등이 어느새 권력자의 착취의 도구로 변질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거다

고로 우리는 더 나은 시민사회를 위해 실질적이지 않은, 혹은 복지의 사각지대의 (예를 들면 관리자는 요리에 머리카락이 있으면 죽을듯이 화를 내나 실상 하위층에서는 배설물이 섞인 요리를 받는 것)진정으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떤 효율적 방법으로 부를 배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있는듯하다.무의미할지 모를 고민이나 시민사회의 일원이라면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를 꿈꾼다면 충분히 해봄직한 고민이기에 나는 영화 더 플랫폼이 철학서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심오하게 남길 원한다. 그렇기에 모호한 결말 또한 마음에 든다.


  • 0
3.5

'더 플랫폼'은 위에서 승강기로 내려다주는 음식으로 살아남는 수직 감옥의 사람들이 아래층으로 갈수록 인간성을 시험 받는 스릴러 영화다. '큐브' 같은 폐쇄적 느낌도 있고, '원피스'의 임펠 다운이 떠오르기도 하는 상당히 특이한 설정에서 영화는 굉장히 잔혹한 이야기를 통해 한정된 자원과 수직화된 사회에 대한 비관적 이야기를 한다.

위층에서 먹다 남은 음식으로 아래층까지 살아남아야하는 수직 감옥은 명백히 계층화된 사회에 대한 은유다. 소수의 상위 계층이 한정된 자원을 독식하고, 대다수의 하위 계층은 생존을 위해 서로 물어뜯게 되는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차가운 쓴소리며, 어떤 면에서는 '기생충'에서 말하고 있는 점의 일부가 반영됐기도 하다. 무작위로 매달 바뀌는 층수라는 설정을 통해 영화는 다양한 계층에서 겪는 딜레마와 문제들을 피와 고어로 가득찬 이야기를 전개하며, 떨어질 두려움에 벌벌떠는 자들과 올라갈 기대에 인간성을 잠시, 그리고 영원히 포기한 자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은유와 메시지가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참신한 설정에 비해 메시지들은 상당히 명확하며, 초중반부 이후부터는 엔딩만 궁금하지, 여정은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주제적인 아이디어가 비교적 빨리 고갈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주 깊은 메시지를 가진 영화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설정을 가지고 장르적인 오락을 좀 더 유의미하게 전개한 영화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90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에 걸맞는 장르물이며, 세계관에 대한 설정이나 후반부 전개가 다소 어설픈 점이 있더라도 전반적으로는 충분히 즐길 만한 영화다.


  • 0
0.5
'더 플랫폼' 초간단 리뷰

1. 가끔 아주 노골적으로 메시지가 보이는 영화가 있다. 이 경우는 이야기를 쓰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 장면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거야"라고 작정한 경우다. 이 경우 나는 리뷰를 쓰기 싫어질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이것은 감독이 정한 답 안에서 놀아나는 느낌이다. 이것은 내가 어느 순간부터 김기덕 영화를 싫어하게 된 이유에도 해당된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김기덕 영화를 보면서 "이 인간은 자기가 보통의 인간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정확히 어떤 작품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일대일'을 봤을 때 정말 노골적으로 느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승려가 자신의 깨달음을 과시하듯 내려다보며 설법을 전한다. 그런데 그 설법이 하찮게 느껴진다. 김기덕의 영화는 어느 순간 그랬다.

2. '더 플랫폼'은 중기 이후 김기덕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감옥과 음식이 등장하는 설정은 대단히 초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초현실적인 기호는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아주 노골적으로' 상징한다. 이 노골적인 설정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권력이동의 원리, 혁명의 방향 등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깨기 위해 사회주의적 정서를 가져온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해를 두고 이 영화를 본다면 레고 블럭처럼 완벽하게 들어맞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글을 쓰기 싫다. 정치적 이해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야기가 바란 바이기 때문에 거기에 휘둘리는 것이 재미가 없다.

3. 올해 내가 몇 편의 영화를 더 볼 지 모르겠다. 그러다 '리얼'같은 영화를 만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더 플랫폼'은 '올해 최악의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것보다 이 영화의 태도가 기분이 나쁘다. 게다가 계급사회에 대한 메타포라면 더 잘 만든 이야기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차라리 영화 '파리대왕'이나 '엑스페리먼트'를 보는 쪽이 더 흥미롭지, 이건 너무 노골적이고 단순하다. 깨달음을 얻은 듯 0층에서 내려다 보지만 정말 별 것 없는 0층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어떤 메타포도 읽고 싶지 않다. 답정너도 이런 무식한 답정너가 없다.


  • 0
4
휴머니즘이 결여된 사회, 존엄성과 본능 사이의 고찰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적인 사고와 윤리, 그리고 존엄성을 가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생존 본능에 위협을 받았을 때도 인간다움이 지켜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 <더 플랫폼>은 인간의 삼대 욕구라고 불리는 식욕, 수면욕, 성욕 중에서 ‘식욕’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장르적 메커니즘 속에서 사회 불평등과 팬데믹의 혼란이 현재 시대상과 때마침 잘 통한다.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극한으로 몰아넣었을 때 그 한계를 서서히 지켜보는 고문이다. 끔찍하고 잔혹해 차라리 눈 감고 싶다. 한 끼를 굶어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나는 만약 감옥에서 깨어난다면 살아 나갈 재간이 없다고 상상했다.

사회의 축소판 수직 시스템의 질실

영화는 시작부터 수위가 높다. 현대 신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투영한 은유가 돋보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직 감옥에서 깨어난 남자 고렝(이반 마사구에)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이미 1년을 버틴 룸메이트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는 그동안 모은 정보를 조금씩 쏟아낸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한 번 위에서 음식을 담은 플랫폼(식탁)이 내려오고 한 달 주기로 방이 랜덤으로 바뀐단다. 층을 이동할 때마다 새 계급을 받는 것. 아랫사람을 업신여기고 위층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때문에 배설물은 물론, 다른 사람도 먹지 못하도록 멀쩡한 음식도 망가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한다.

소위 구덩이라 불리는 건물은 몇 층까지인지 알 수 없어 절망적이다. 누구라도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예측불허의 묘미가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마치 돈이 있을 때와 돈이 없을 때가 달라지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것 같아 씁쓸함이 커진다.

확실한 것은 밑층으로 내려 갈수록 먹을 음식은 줄고, 분노와 욕심이 커진다는 거다. 꼬리칸에서 머리칸까지 직진하는 <설국열차>의 수직 버전 같다.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만 있는 서열화의 표본, 명확한 피라미드다. 궁지에 몰린 인간이 앞서 말한 동물과의 차별성이 끝까지 지켜질지가 의문이다. 이야기가 점점 흥미로워진다.

영화는 타인과의 연대, 고착된 시스템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충격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 건물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닥치는 대로 먹어두지 않으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플랫폼 위에 있을 때만 섭취가 가능하며 음식을 쟁여 놓았을 경우 여지없는 제약이 가해진다. 때문에 더더욱 지금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커진다.

먹을 만큼 먹는다는 말을 절대로 지킬 수 없다. 마치 뷔페에서 먹지도 못할 음식을 접시 가득 담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인지, 남이 먹기 전에 내가 먹으려는 욕심인지 이유 없는 행동이 이어진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층에서 깨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보복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방이 무작위로 재배치되면 특권층과 아래층의 계급은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은 인간의 광기를 자극해 먹히는 것보다 먹는 편이 낫다는 인식을 누적한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경악스러운 행동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인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고렝은 사실 다른 사람들과 들어온 경위가 좀 다르다. 6개월을 버티면 학위를 준다는 말에 덜컥 지원한 것이다. 이참에 담배도 끊고 책이나 보자는 심산으로《돈키호테》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가 책을 고른 건 다소 의아하다. 딱 하나의 물건만 반입 가능한데 책을 가지고 온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다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거나 생명을 지킬 것을 오지만. 고렝은 세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직진하는 고독ㅁ한 돈키호테를 자처한다.

고렝은 처음에는 역겨워 먹지 못하지만 차차 시스템에 순응한 듯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이타심이 살아 있다. 과연 그를 구원자나 전달자로 볼 수 있을까. 그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다. 바로 플랫폼을 타고 바하랏(에밀리오 부알레)과 바닥 향해 내려가자는 것. 가만히 6개월만 버티면 나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고난을 자처하게 된다.

한 층씩 내려가며 그동안 먹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지켜낸다. 그리고는 설계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판나코타를 지켜낸다. 과연 고렝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인간의 존엄일까, 목숨일까? 판나코타가 완벽한 상태로 시작하는 층은 하층민의 메시지에 응답할 것인가?

새로운 시스템이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

민주주의 사회란 낙오자 없이 모두를 위한 사회다. 나만 살고자 하는 이기심, 개인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곳의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조금씩만 가지고 함께 연대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머리로만 알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이 시스템에서 25년간 일했던 이모구리(안토니아 산 후안)의 주장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이 회사의 사무직이었던 그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청해 들어왔다. 그녀는 접시에 챙겨둔 것만 먹고 2인분의 접시를 따로 마련해 밑의 층 사람들이 먹도록 배려하자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한다. 배식의 칼로리를 나누면 모두가 살 수 있는 자발적 연대를 주장하고 나선다. 하지만 연대의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음식을 먹을 만큼 먹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지만 나도 당했다는 분노와 욕심은 보복 심리를 부추긴다. 음식을 밟거나 배고프지 않아도 욱여넣음으로써 심리적 만족을 얻는 거다. 점점 인간성을 잃고 괴물만 남게 된다. 고립, 불안, 배고픔 앞에서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이기적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영화 속 모순적인 체계는 삐걱거려도 대충 굴러가게 되어 있다. ‘어쩔 수 없고 뻔한 것’이라 포기해 버리면 언젠가 자신마저 거대 시스템의 한낱 부품으로 희생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아니었지만 내일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영화 속 사람들은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인간성을 저버린다. 그 매개를 한정된 음식 배급으로 보여주었다. 열심히 살려고 안간힘을 써도 결국 가난과 허기를 벗어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계급은 고작 6미터의 층간 높이다.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시대 <더 플랫폼>은 묻고 있다. 지금 시스템에 순응할 것인가 6미터를 넘어 바꿀 것인가.



  • 0
4
[백스물넷] 더 플랫폼

안녕하세요, 박군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 하고 자가격리하고 계신가요? 저 또한 학교내에서 지금 접촉자가 많이 나오고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도중, 신촌과 홍대 그리고 이태원까지 3차 코로나 바이러스로 폐쇄를 하고 말았습니다. 비대면 수업도 제대로 진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저는 정말 집에서만 먹고 자고 싸고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그런 집콕을 하는 사람들 처럼, 감콕! 이라고 해서 감옥에 콕 박힌 주인공의 프리즌 이야기 <더 플랫폼>을 리뷰 해 보려고 합니다. <더 플랫폼>은 '스페인'영화로 SF 스릴러 영화인데, 심리적인 공포를 확실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유일! 은 아니지만, 유'삼' ? 전 세계에서 극장개봉 한 국가가 정말 몇 없는데 그 중에 한 곳이 한국입니다. 나머지는 넷플릭스로 통해 공개되었는데, 이 영화는 정말 정말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로 보고 느껴야 확실히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의 이름이 너무 길고 발음을 어떻게 번역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가더 가츠테루-우루샤'감독은 <더 플랫폼>이 첫 작품입니다. 이전에 뮤직비디오, 광고 CF 등 촬영을 한 감독입니다. 입봉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 너무 잘 만들었거든요.

'이반 마사구에'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에서 단역으로, <카미카제>, <더 이어 오브 더 플래그>...등 주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리온 에귈레오', '안토니아 산 후안', '에밀리오 부알레'...등 여러 배우들이 나왔습니다.

​비주얼

​이 영화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수직 감옥'이라는 컨셉으로 감옥사람들이 갇혀있는 이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적인 공포와 충격들을 잘 표현했고, 갈수록 추악해지면서 서로간의 갈등도 잘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는 조명을 정말 잘 썼는데 붉은색과 초록색, 하얀색과 검은색이 잘 어우러져 있고, 분위기가 정말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노래소리에 맞춰서 화면이 몽타주 형식으로 넘어가는것도 정말로 마음에들었고, '음식'이라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디어 마저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배경음악이라던지 엔딩곡도 기억에 남고 정말 스릴만점 영화였습니다.

연기

​이반 마사구에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저는 처음보는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도 그렇게 그의 팬아트와 그의 사진들이 많이 있다는거 보면 저도 납득이 갑니다. 그럴만큼 연기를 잘 했기 때문입니다. '고렝' 이라는 캐릭터 연기를 정말 잘했는데, 적응을 하기 전 부터, 최 하층으로 내려간 고렝의 미쳐가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장면까지 스릴넘치고 잘 연기를 했습니다. 사실 '이반 마사구에' 배우가 주된 배우이긴 하지만, 그 주변의 배우들도 매력있는 캐릭터를 연기했었는데, '조리온 에귈레오' 배우의 섬뜩한 연기도 또한 좋았으며, '안토니오 산 후안', '알렉산드라 마상카이', '지하라 랴나'까지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줬습니다.

스토리

​이 영화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계급'과 '신분'에 관련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전혀 이 두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영화입니다. 수직감옥 이라는 곳에서 '밥상' 이라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나게 만드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정말로 잘 다듬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의 의도와 감독의 아이디어도 참신하고, 정말로 괜찮았습니다. 오로지 '수직감옥' 이라는 곳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로 인물의 이야기들을 다 말로 밖에 듣지 않았지만, 그것도 또한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이며 오히려 다른 곳 다른 장면으로 가면서 보여줬다고 했으면 분위기를 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수직감옥'을 탈출하는 영화일까? 아니면 '구출'하는 영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였습니다.

결론

​이 영화는 보기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고, 영화를 보러간 날에도 정말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수퍼플렉스 G'관에서 전국에서 가장 큰 스크린에 가장 좋은 사운드로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라는 것에도 기대를 하고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릴넘치고 재밌게 잘 보았고, 이 영화는 다른사람 에게도 추천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서사적인 영화라기 보단 이 영화도 흘러가는 그 순간만큼 같이 흘러가면서 보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의미부여를 계속해서 찾지 않고도 영화의 절반이상은 이해를 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정말로 재밌게 보았고, 좋은 스릴과 좋은 스토리까지 잘 지닌 수작이라고 생각이 들며, 이 영화를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로 볼 수 있게된 점에서 수입/배급을 해준 영화사 더쿱, 씨나몬 (주) 홈초이스 직원분들께 박수를 드리며 별점 4점과 초록색 신호등을 주었습니다.


  • 0
4
우리가 맞이한 작금의 팬데믹 시대에 알맞는 영화.

최상위 0층부터 최하위 333층까지. 매 달 한 공간에 두 명씩 위치하는 층이 랜덤으로 바뀐다.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자발적 연대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수직 자기관리센터 '구덩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영화 더 플랫폼은 이런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로 일단 시작한다. 맨 꼭대기층인 0층에서부터 333층에 한 달동안 거주하게 되는, 한 층에 머무르는 두 명의 사람들을 위한 식사가 배급되고 모두 균일하게 식사를 한다면 모두가 한 달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양을 제공한다. 어제는 333층이었지만 다음달엔 1층에서 깨어날 수도 있는, 무작위의 경우의 수에 사람들은 매달린다.

영화 더 플랫폼의 주인공인 '고렝(이반 마사구애)'은 자신의 학위를 받기위해 6개월 동안 구덩이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최초의 층인 48층에서 깨어난다. 그와 함께 파트너로 한 달동안 지내게 된 사람은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 늙고 작은 이 노파는 어느날 tv를 보는데 돌덩이도 자를 수 있는 사무라이 칼갈이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광고를 보면서 분에 못이겨 텔레비젼을 창 밖으로 던져버렸는데 불법체류자가 그 tv에 맞아 죽어, 정신병원에 수감될 건지 이 구덩이에 들어갈 건지 선택하라고 하길래 들어온 인물. 트리마가시가 열이 받았던 포인트는 칼갈이 cf가 끝나고 곧바로 돌도 자를 수 있다는 사무라이 플러스 칼 광고를 본 이후였다. 이 구덩이엔 참여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소지품이나 물건을 하나씩 고를 수 있는데, 드리마가시가 들고 들어온 건 역시 사무라이 플러스라는 이름의 칼.

자신의 구덩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트리마가시는 혹시모를 최하층 신세를 면하기 위해 사무라이 플러스를 자신의 몸처럼 귀하게 지니고 다닌다. 주인공 고렝은 한가롭게 책 한권(돈키호테)을 들고 구덩이에 들어왔다. 하루에 딱 한 번 0층에서 내려오는 식사가 담긴 식탁을 '플랫폼'이라고 명명했기에 영화의 제목이 이렇게 되었다. 고렝은 구덩이의 오랜 경험자인 트리마가시의 충고를 무시하고 3일 정도까지 물만 마시며 쫄쫄 굶다가 결국 순응하여 윗층에서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플랫폼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돌아다니는 여자 '미하루(알렉사드라 마상카이)'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구덩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이를 찾기위해 최상층에서 최하층까지 끊임없이 이동하는 인물. 층에 괴악한 남자 둘이 있을 경우, 당연지사 성적으로 유린당하기 딱 좋은 캐릭터인 미하루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녀에게 달려드는 남자들을 죄다 죽여가면서 살아간다. 트리마가시는 미하루의 아이 따윈 이 구덩이에 없으며, 존재한다고 해도 진작에 굶어죽었을 거라면서 미하루를 정신병자취급한다.



이윽고 한 달이 지나 132층에서 깨어난 고렝과 트리마가시. 주인공보다 훨씬 생존능력이 높고 사무라이 플러스라는 칼도 가지고 있는 트리마가시는 고렝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 그의 사지를 묶어,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고렝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1년 넘게 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바로 트리마가시다. 달팽이 요리를 할때는 달팽이의 독을 다 빼내야 한다며 며칠동안 고렝에게 물도 먹이지 않고 녹초가 되게 만드는 트리마가시. 그의 굶주림이 극에 달했을 때 고렝의 살을 파먹기 시작하지만 마침 플랫폼에 타고있던 미하루가 나타나 고렝을 도와준다. 그리고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초죽음에 이른 고렝에게 트리마가시의 살을 베어 먹이며 그의 생존을 돕는다. 미하루는 다시 플랫폼을 타고 내려가고 혼자 살아남은 고렝은 또 한 달을 버텨 새로운 파트너인 '이모구리(안토니아 산 후안)'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고렝의 구덩이 면접을 도왔던 접수원이었다.


자신의 애완견인 '람세스 2세'와 함께 구덩이에 들어온 이모구리. 다행히 그들이 깨어난 층은 33층으로, 상당히 깨끗하고 많은 수준의 식사가 플랫폼을 타고 내려오게된다. 강아지와 하루씩 번갈아가며 식사를 하던 이모구리는 구덩이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에 아래층 사람들에게 2인분의 정량 식사를 접시에 따로 담아놨으니 구덩이에 있는 사람들이 공평하게 음식을 나눠먹으면 모두 다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거라고 독려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는 이는 없다. 구덩이와 관련이 있는 이모구리에게 고렝은 자신의 궁금증을 계속 물어보지만 일개 접수원일 뿐인 이모구리.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고 두 사람은 171층에 내려오게 된다. 고렝이 눈을 떴을때 이모구리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 또 혼자가 된 고렝은 벽에다 목을 맨 이모구리의 살을 뜯어먹으며 생존하게되고 다시 또 한 달이 흘러 6층에서 꿈처럼 깨어난 고렝. 그곳에서의 새 파트너는 힘세고 진보적인 생각을 지닌 바하랏. 5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밧줄을 잡아달라며 자신이 맨 상위층으로 가, 운영진들을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건 5층 사람들의 똥 뿐이었다.

결국 바하랏과 고렝은 맨 아래층까지 플랫폼을 타고 내려가면서 모든 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일정량의 음식을 직접 배분하기로 결정한다. 플랫폼이 최하층인 333층까지 닿은 다음엔 초고속으로 다시 수직 상승하는 시스템의 맹점을 노린것. 하지만 두사람의 의지는 51층 이하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적어도 51층에 머무르는 사람들한테까지는 그나마 먹을만한 음식 찌꺼기들이라도 남아있었기 때문. 결국 몸을 많이 다친 두 사람은 최하위층인 333층에 도달하기에 이르는데 그곳엔 미하루의 아이가 진짜로 있었다.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긴 음식들 덕분에 음식이 깨끗한 채로 플랫폼을 다시 올려버리면 운영진들의 생각이 조금은 바뀔거라는 두 남자의 계획 대신 단 하나의 최고급 음식인 판나코타(푸딩)만은 목숨을 걸면서 지키고 있었는데 굶주리고 있던 미하루의 딸에게 그걸 먹이고 대신 그 아이를 플랫폼에 태워, 최상층으로 보내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게 영화 더 플랫폼의 결말이다.

영화 더 플랫폼은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팬데믹에 빠진 지구인들을 위한 영화같다. 한정된 자원을 모두 공평하게 나누자는 고렝의 말을 듣고 트리마가시는 공산주의자냐며 비아냥대지만 서로 다른 질의 노동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격차도 꽤나 커져버린 이 시대에, 조금 많이 가진 사람들이 많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양보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영화 더 플랫폼에서 식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레벨은 오직 랜덤으로 돌아가는 각 층의 위치 뿐인지라 마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가치관과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의 가치관을 비유하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은 모두 자기책임이지만 그 이전, 유년시절의 모든 걸 결정짓는 것들은 부모가 지닌 부와 거기에서 오는 부모의 결정권, 혹은 가치관이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고를 수는 없다.



결말과 설정은 이런 장르의 영화(특히 큐브)가 대부분 그렇듯이 제대로된 설명도 없고 주인공은 후반에 가면서 이미 죽은 트리마가시와 이모구리를 보는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린다. 결말 역시 뭔가 멋진 일들을 보여줄 것 같지만 소녀 하나 플랫폼에 태운채 333층 더 밑의 맨 바닥에서 고렝이 어디론가 걸어가며 끝이난다. 모두 조금씩만 양보하면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을거라는 메시지 하나만 남긴 영화 되시겠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0층이나 1층이 일반적인 최하층이 아니라 맨 위부터 번호를 매겨가는 방식으로, 거꾸로 반전되어있다는 것(0층이 최상위 층이고 333층이 최하위층). 그리고 가장 신기했던 설정은 '플랫폼'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담겨져 있는 식탁이 아무 장치도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데 그걸보고 누구하나 신기해 하지 않는게 신기했다. 등장인물들이 왜 이런 시설에 갇혀서 몇 달을 보내야하고 구덩이를 정부에서 운영하는지 일개 회사가 운영하는지 등의 설명 역시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0층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나르는 사람들은 대사조차 묵음처리 되어 보여진다. 꽤나 불친절한 영화, 더 플랫폼이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개인 이기주의를 펼치면 충분히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요즘 시기에 딱 어울리는 영화였다. 특히 공적마스크 이전부터 마스크 물량이 부족해 모두 아웅다웅하던 것과 자신보다 더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적마스크 구입을 포기하는 사람들, 남들이 코로나에 걸리던 말던 '현재'가 중요하다며 이태원 클럽에 가서 흥청망청 놀아자빠지던 사람들 등 여러 인간군상들이 더 플랫폼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이하 블로그)

https://realnogun.blog.me/221967431063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