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Jojo 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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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2차 세계 대전 말기,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살고 있는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원하던 독일 소년단에 입단하지만 겁쟁이 토끼라 놀림 받을 뿐이다.

상심한 ‘조조’에게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는 유일한 위안이 된다.

‘조조’는 어느 날 우연히 집에 몰래 숨어 있던 미스터리한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왜 여기에?!

당신을 웃긴 만큼 따뜻하게 안아줄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고편


감독/출연

타이카 와이티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스칼렛 요한슨
스칼렛 요한슨
로지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조조
토마신 맥켄지
토마신 맥켄지
엘사
타이카 와이티티
타이카 와이티티
상상 속 친구 '히틀러'
레벨 윌슨
레벨 윌슨
스테판 머천트
스테판 머천트
디어츠
알피 알렌
알피 알렌
핀켈

리뷰

94.96%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5% 95%
3.5
끔찍한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으며, 곧 다가올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6개 부문(각색상, 미술상, 여우조연상, 의상상, 작품상,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 (2019)은 나치 시대라는 끔찍한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준 작품이다. 우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마블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2017)에서 보여줬던 유머 감각과 약간 ‘Wes Anderson-ish’한 미장센으로 반혐오 풍자극(anti-hate satire)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을 일으키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비판과 곤경에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두려움 속에서도 견지해 가는 삶을 일기로 작성한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기림으로써 비극적인 사건을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조조 래빗>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독일 소년단을 지도하는 ‘클렌젠도프(샘 록웰)’의 대사, 무기를 생산해야 하지만 자원이 부족해 동네에서 철을 수집하는 업무를 돕는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의 장면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조 래빗>은 영화적 허용을 활용해 1940년대에 1920년대와 1930년대 나치 정권의 산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는 1922년에 설립된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라는 청소년 조직을 극 중 독일 소년단을 구상할 때 반영했거나 독일 소년단의 캠핑 장면에서는 1933년 5월 나치 정권이 일으킨 베를린 분서 사건(Bücherverbrennung)을 참고했다. 게다가, 원래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를 극 중에서는 최전선 가까이에 있는 독일 마을로 옮겨 반영했다.

1. 나치 정권을 비판하고 짓밟는 풍자극

‘조조’를 포함한 독일 소년단원들은 항상 단검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 이 단검은 실제로 히틀러 유겐트 단원들이 지니고 다녔던 유겐트 단검이다. 유겐트 단검에는 전체주의적 슬로건이 새겨져 있을뿐더러 나치즘을 상징하는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스스로 나치광임을 자처하는 ‘조조’가 유대인 ‘엘사(토마신 맥켄지)’에게 쉽게 단검을 빼앗겨 굴욕을 당하는 장면, ‘조조’의 친구가 숲 속에서 던진 단검이 나무에 튕겨 다른 친구의 허벅지에 꽂혀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장면 등을 삽입해 나치즘이 청소년에게 세뇌시키려고 했던 ‘피와 명예’라는 슬로건을 짓밟는다. 끔찍한 시대의 산물 및 사건을 전하면서 짓밟는 방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베를린 분서 사건이 있다. 영화에서 베를린 분서 사건은 독일 소년단의 캠프파이어로 변주되어 소개된다. 소년단원들이 캠프파이어를 위해 책들을 모닥불에 던지는데 캠프파이어 시퀀스가 끝날 때쯤 불태워지는 책들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구체적인 책 제목이나 작가명을 확인할 수 없지만, 책에 새겨진 어떤 상징체를 클로즈업해 보여줬다는 점에서 1933년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독일 국민들의 정신 획일화 및 세뇌를 위해, 그리고 비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키기 위해 태운 책들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극 중 소년단원들의 웃음소리와 캠프파이어의 불빛을 거두면 장면의 심층에서 실제 사건의 참담함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참담함은 나중에 통쾌함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책을 태우는 강렬한 불씨가 후반부 전멸되는 나치군을 휘감는 불씨와 조응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일 소년단의 캠핑장에서 ‘클렌젠도프’가 무기 사용을 시연하려고 하는데 ‘조조’의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가 그 앞을 뛰어다니는 장면은 레니 리펜슈탈 감독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 (1934)과 같은 기록물에 담긴 아돌프 히틀러와 정반대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숲 속을 뛰어다니는 히틀러를 토끼의 뜀박질에 등치시켜 히틀러를 우상화하려고 했던 독일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그를 조롱의 대상으로 깎아내려 웃음을 유발한다. 이뿐만 아니라 중후반부 ‘조조’의 집 시퀀스에서 나치 경례가 대략 50회 실시되는데, 이처럼 남발된 경례는 축적되면서 또 다른 웃음을 유발한다. 원래 나치 경례는 히틀러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모습을 형상을 행위로 표현된 것이고, 손끝이 로우 앵글 쇼트처럼 아래에서 위로 향하므로 이는 그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나치즘의 산물이다. 근데,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기계적인 반복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인물들이 히틀러에 충성하는 듯한 허상을 만든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019)에서 실제 역사를 수정해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겼던 누군가에게 위로를 안겼던 것처럼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히틀러가 허수아비로 취급받는 시대적 분위기를 만든 후 무고한 시민과 유대인의 재능과 자유를 말살했던 나치 시대를 희생자들을 대신해 짓밟는다.

2. 안네 프랑크에게 바치는 헌시

<조조 래빗>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반혐오 풍자적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멈추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실존 인물의 꿈을 영화에서라도 대신 이루려는 자세를 취한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아마 이 영화는 『안네의 일기』 (1947)를 남기고 안타깝게 일찍 생을 마감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미처 다 피우지 못한 꿈을 대신 펼쳐 바친 헌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배우 토마신 맥켄지가 연기한 ‘엘사’라는 캐릭터는 안네 프랑크와 오버랩이 된다. 왜냐하면 안네 프랑크가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한 건물의 비밀 공간에 은신해 생활했듯이, ‘엘사’도 ‘조조’의 집에 숨겨진 공간에서 숨소리를 죽이면서 살아가고, 간간이 ‘로지(스칼렛 요한슨)’과 ‘조조’의 도움을 받아 의식주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믈론 ‘엘사’는 안네 프랑크처럼 일기를 포함해 어떤 글도 쓰지 않는다. 영화에서 글쓰기는 오로지 ‘조조’의 몫이다. 그렇지만, ‘엘사’에게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그녀에게 안네 프랑크의 재능과 총명함이 투영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가끔 클로즈업 쇼트에 담긴 ‘엘사’의 표정은 자기 내면에 침잠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며 조숙해진 안네 프랑크의 삶을 연상시킨다. 비록 긴 세월이 흘렀지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영화를 활용해서라도 춤과 자유를 매개로 재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안네 프랑크에게 평안과 위안을 주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집 바깥에서 ‘엘사’가 조조’와 함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음악 ‘Heroes’에 맞춰 춤을 추는 시퀀스는 바깥에서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구경하고, 청춘을 즐기고, 그리고 춤을 추는 자유를 끝내 만끽하지 못한 안네 프랑크에게 헌정하는 시퀀스다. 무엇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기 직전에 인용된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Geh bis an Deiner Sehnsucht Rand(영어 제목: Go to the Limits of your Longing)’의 일부분 또한 힘든 시대 속에서도 꿋꿋이 나름의 행복을 찾아 나섰던 안네 프랑크에게 들려주고 싶은 텍스트일 테다. 그리고 이는 <조조 래빗>을 관람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Lass dir Alles geschehn: Schönheit und Schrecken.
(Let everything happen to you: beauty and terror)

Man muss nur gehn.
(Just keep going.)

Kein Gefühl ist das fernste.
(No feeling is final.)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Geh bis an Deiner Sehnsucht Rand’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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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이의 눈으로 들여다본 전쟁의 참상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처럼 어릴 적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친구가 있었는가. 우리는 자라면서 안타깝게도 그 친구들과 하나둘씩 이별하게 된다. 영화 <조조 래빗>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상상의 존재를 소환한다.

<조조 래빗>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을 포함해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는 범상치 않은 영화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유년 시절 읽었던《닫힌 하늘》을 각색했다. 연출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히틀러로 변신해 연기까지 선보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코미디를 가장한 사회비판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의 참상은 서서히 커지는 악의 균열을 초래한다.

조조의 첫 번째 멘토 엄마 로지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에 사는 열 살 꼬마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나치광이다. 독일의 자랑스러운 소년단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마음 여린 소년일 뿐이다. 겁쟁이라 놀림당하지만 자신의 영웅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거침없다.

조조는 엄마와 단둘이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밖에서는 강하지만 조조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친구 같은 엄마다. 열 살 조조에게 전쟁이 좋다 나쁘다는 이념적인 교육보다 “삶은 신의 선물이니 즐겨라”라는 조언으로 대신하는 멘토기도 하다.

로지는 마치 전쟁을 일종의 게임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아빠(로베르토 베니니)가 생각나는 캐릭터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로지는 전쟁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아마 남편 또한 운동권으로 죽었겠지만 조조에게는 나라를 위해 전쟁에서 싸우고 있다고 둘러대고 있다.

전시(戰時)라는 공포를 전혀 알 수 없게끔 깊은 사랑과 뛰어난 패션 감각, 따스한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녹아들게 하는 핵심 인물이다. 식탁은 스위스 같은 중립지대라 정치 얘기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이데올로기, 종교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삼간다.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춤을 추길 좋아하고, 아빠 역할극도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유머를 품고 있다. 소년단에서 잘 못 던진 폭탄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은 조조에게도 상처는 곧 아물기 마련이라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것을 당부한다.

조조의 두 번째 멘토 유대인 엘사

로지는 조조에게 말 못 할 비밀을 품고 있었다. 바로 유대인 소녀를 숨겨주고 있었던 것. 조조는 벽 속에 사는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와 우연히 마주한다. 마치 《안네의 일기》속 안내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 만큼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었지만 유대인 소녀가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자 당황한다. 순결한 피가 흐르는 아리안 족 만이 최고이며 불결한 유대인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체 없는 공포, 맹목적 충성은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다.

서서히 엘사와 서서히 마음을 열며 누나이자 친구,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간다.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마침 유대인에 관한 책을 쓰는 데 도움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소녀를 묵인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유대인에 대해 알려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엘사의 남자친구 네이선을 가장해 편지를 쓰기도 한다. 엄마가 말해도 이해 가지 않았던 마음에 나비가 생기는 까닭도 스스로 깨친다.

조조의 세 번째 멘토 상상의 친구 히틀러

조조가 히틀러는 찬양하는 이유는 순수하기 때문이다. 조조는 아버지가 없어 히틀러를 보고 배울 롤모델로 삼았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멋지고 강한 인물은 히틀러였기에 이유를 떠나 단순히 닮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비록 살아있는 토끼를 죽이라는 명령에 불복종해 겁쟁이 토끼 ‘조조 래빗’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다. 히틀러는 하찮아 보이는 토끼라도 가족을 위해 매일 당근을 사냥하는 당근 사냥꾼이라는 해석으로 조조의 상처를 위로한다. 상상 속의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 히틀러는 그냥 열 살 꼬마에겐 말 하나하나가 진리이고 삶의 버팀목이다. 다행인 것은 히틀러를 친구이자 영웅으로 삼았지만 좋은 어른들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 배워간다는 점이다.

조조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독일 국민을 대변한다. 유대인은 머리에 뿔이 달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괴물, 여왕 한 마리가 알을 낳아 번식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 믿고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다. 히틀러와 나치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며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각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철저하게 세뇌당해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당시 독일인들 같다.

그래서 직접적인 모습보다 간접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다. 길거리에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전시되고, 전쟁으로 불구가 된 사람들과 수영장에서 치료를 받으며, 게슈타포들이 보통 사람처럼 그려지는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다.

영화 <조조 래빗>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쟁 속에서 판타지를 차용해 사랑과 자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사랑이 필요함을 힘주어 말한다.

조조는 처음에는 신발 끈 하나도 혼자 묶기 힘든 아이였지만 스스로는 물론, 엘사의 신발 끈까지 묶어주며 성장한다. 신발은 각각 신발 끈을 묶어야만 제대로 걸어갈 수 있다. 두 짝의 신발 끈을 서로 묶었을 때는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결박 상태가 된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벽장 속에 숨어 살던 엘사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갈 때의 자유. 살면서 얼마나 자유가 소중한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유. 사랑과 자유는 보이지 않아 알지 못할 뿐 늘 존재하고 있었다.

마음에 생긴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나비효과는 단단한 산도 움직일 수 있다. 세상은 아이러니한 일들의 연속이고, 누구도 변화 앞에서 버틸 수 없다. 판도라가 열고 닫았던 상자 속의 남은 희망처럼. 나비를 쫓아가는 여정이 아무리 고될지라도 사랑이 있어 오늘도 견디는 건 아닐까. 미움이 만들어 낸 전쟁을 끝내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다. 사랑이 이긴다.



  • 0
4.5
웃다가, 울다가, 웃으며 춤추게 만든다

전쟁의 반의어는 뭘까요? 자연스럽게 평화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실제로도 이 단어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는 뜻을 지녔지요. 하지만 지극히 이상적인 개념이라 현실에서는 숱한 모순을 안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남긴 뮌헨 협정이 한 해 뒤 나치 독일에 어떻게 짓밟혔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알고 있으니까요.

『조조 래빗』 역시 나치 독일을 담은 영화로, 총통을 선망하는 아이 조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주창하는 모습은 섬뜩하지만, 아무리 자랑스러운 조국의 소년단이라 할지라도 군데군데 미성숙한 면을 지닌 10살짜리 꼬마일 뿐이지요. 의욕만 앞서다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처음으로 다른 생명의 생살여탈권을 쥐었을 때도 차마 죽이지 못해 놓아줄 정도니까요.

그렇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고민할 때마다 조조는 마음 속 친구와 담소를 나누곤 하는데요. 어느 날, 이 우애 깊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친구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던 괴물이 벽장 속에 있던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껏 들어온 것과 달리 이 괴물은 전혀 괴물로 보이지 않지요. 마음 속 친구와 벽장 속 괴물, 나치와 유대인, 압제자와 자유인... 여러모로 상반된 존재인 히틀러와 엘사를 마주하며 조조는 답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아요. 전쟁의 끝은 점점 다가오고, 엘사를 향한 수사망도 점차 좁혀오지요. 들어설 때마다 하일 히틀러를 반복하는 게슈타포 무리는 우습기 그지없지만, 그럼에도 명백한 위협의 형태를 갖춰 조조의 가장 소중한 멘토를 앗아갑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유년기의 끝. 앞으로 누구와 함께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 조조의 결정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머리에 총알구멍이 난 옛 친구가 건넨 하켄크로이츠의 무도함과 무의미함은 이미 뼛속 깊이 느꼈으니까요.

“춤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추는 거야.”
조조의 어머니, 로지는 언제나 춤을 잊지 않습니다. 얽매이지 않은 자들의 춤사위는 그것만으로도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가졌으니까요. 결말에서 엘사와 조조가 함께한 1분 남짓한 춤이 오래도록 관객에게 기억되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어쩌면 전쟁의 반의어에 적합한 건, 평화라는 거창하고 쉽게 와닿지 않는 개념이 아니라 그저 몸 가는 대로 들썩거리는 자유인의 춤일지도 모르겠네요.


  • 0
4.5
짐작으로 얼룩진 시선을 거두면 사랑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 몸 안에도 나비가 가득 차는 듯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너무 따뜻해서. 전쟁의 참혹함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표현한 덕분에 그릇된 신념에 대해, 그 신념이 생기는 '처음의 시간'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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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조 래빗>은 '토끼처럼 겁이 많아' 놀림을 당하고 상처까지 입는 조조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조조의 신체적 시선은 낮아서, 낡고 닳아버린 엄마의 신발이 걸음을 멈춘 걸 목격하게 되지만 정신적 시선은 어쩌면 소위 어른이라 정의되는 인물들 그 이상을 유영한다. 정복과 죽임만이 위대한 것이라 믿는 전쟁 속에서 유약한 피해자가 될 수도, 위대한 성인(聖人)이 될 수도 있는, 어쩌면 그 어떤 현재의 일보다 가장 희망적이고 사랑스러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존재가 중심을 차지하는 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확고하고 단단하게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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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끝없이 터지는 폭탄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총소리를 들려주고 그사이에 나약하게 방치된 약자들을 조명한다. 끌어안는 행위가 사랑이 아니라 죽음의 기억으로 새겨질 아이부터, 어설프게나마 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동네 아낙네들까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떠오르지만,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이에서 조조는 그 어떤 장애물도 문제없을 '사랑'을 배운다. 마냥 괴물처럼 생각하고 있던 존재에게서, 피도 눈물도 없는 줄만 알았던 전쟁의 영웅에게서 말이다. 총과 칼을 겨누는 와중에도 감정은 죽일 수 없었다는 걸, 나비는 뿌옇게 흐려진 시야에서도 꽃을 찾아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조조는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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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때도 지금도 짐작으로 얼룩진 시선을 거두면 사랑이 있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고, 그 끝에서 우리는 함께 발을 구르며 춤을 출 수 있다. 누군가가 사랑을 담아 묶어준 신발 끈을 떠올리며, 또 다른 누군가의 신발 끈에 마음을 담아 꽉 묶어줄 수 있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 0
3.5

나치의 야만적 범죄가 인류 역사에 남긴 큰 충격을 영화로 표현하는 것은 많은 감독과 작가들에게 도전이 되어왔다. 나치가 패망하기 전에 나온 [위대한 독재자]를 필두로 유대인 박해와 홀로코스트의 참상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론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사울의 아들], 그리고 [조조 래빗]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생은 아름다워]에 이르기까지 많은 감독들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히틀러와 그를 지지한 이들의 광기가 낳은 거대한 죽음을 묘사해왔다.

[조조 래빗]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도전적인 영화 중 하나다. 아돌프 히틀러를 상상친구로 둔 10살짜리 히틀러 유겐트가 집에 숨어있던 유대인 소녀와 우정을 만들어가며 또 전쟁의 참상을 깨닫는다는 줄거리는 사람들이 잘못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나치가 저지른 일들을 지켜보는 독일인 화자를 세뇌된 어린아이로 설정하여 책임문제를 축소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나치 중 하나의 악행은 웃음으로 넘긴채 선행을 강조하는 각본과 연출에 대해 불쾌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조조 래빗]이, 유대인과 마오리 혼혈이면서 차별에 대해선 알만큼 아는 타이카 와이티티는 2차대전의 적확한 역사적 의미를 투영하여 표현하기보단 어린 조조와 주변인을 통해 쌓아가는 내러티브에 더 많은 의미를 둔 것 같다. 여러 포비아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공포에 뿌리를 둔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정치 지도자가 늘어나는 지금 그에 현혹된 친구가, 가족이, 동료가 돌아올 수 없는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생각은 우리나 영화 안의 로지 베츨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혐오와 공포로 가려진 눈을 다시 뜨면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믿음.

영화 안의 여러 캐릭터가 빛나지만 역시 조조의 어머니인 로지 베츨러 역할의 스칼렛 요한슨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미쳐버린 세상 속에서 희망과 자유에 대해 얘기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던 캐릭터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연기는 그 캐릭터의 운명이 드러날 때 관객이 더 큰 상실감과 충격을 느끼게 해준다. 타이카 와이티티가 상상 속의 히틀러 역할로 나와 펼친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10살 소년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화된 독재자의 모습으론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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