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

Tiny light

88.46%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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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진무는 수술 후에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기억해야하는 것을 캠코더에 담기 시작한다.

진무는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기억과 기억나지 않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예고편


감독/출연

조민재
조민재
감독
곽진무
곽진무
신문성
신문성
변중희
변중희
김현
김현

리뷰

88.46%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12% 88%
5
모호하지 않았기에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영화적 아름다움

알리 아바시 감독의 영화 <경계선> (2018), 이수진 감독의 영화 <우상> (2018),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 (2019) 등 최근에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들이 모호함이 짙게 물든 쇼트를 종종 활용하거나 열린 결말로 서사를 끝맺음하려는 경향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영화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불분명함이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관객에게 불명확한 쇼트가 만들어낸 시공간의 가정법적인 여백 안에 숨겨진 연출자의 질문을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직접 의견을 표출하고,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같은 영화를 관람한 다른 관객들과 토론할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독이 영화를 찍고 싶지만, 어떤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 있거나,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구상했지만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쇼트나 시퀀스를 활용한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이와 같은 쇼트의 순수한 목적이 허영적인 목적으로 변질되며 영화 자체가 지닌 힘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조민재 감독의 영화 <작은 빛> (2018)은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을 받았을 정도로 대단히 우직한 작품이다. <작은 빛>은 자전적인 영화이며,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감독 본인이 갖고 있었던 존재에 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를 연출하기 전에 감독은 이미 '만약'이라는 가정법적인 질문 위에 서 있었다. 만약, 자기 과거가 사라진다면 혹은 자신이 과거를 상실한 인간이라면, 과연 현실 세계에서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또한, 만약 아무리 본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주장함에도 타인이 자신을 기억해주지 못한다면, 유령이나 다름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극 중에서는 뇌동맥류 수술을 받아야 하는 '진무(곽진무)'가 수술 후에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기억해야 하는 것을 캠코더에 담는 행위로 표현된다. 그리고 조민재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 (1995)처럼 타인의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자기 삶의 영역 안에 끌어들이는데, 극 중에서 기억나지 않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진무를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재고한다.

진무의 캠코더에 담긴 가족의 모습은 이상성과는 거리가 멀다. 즉, 가족이라면 하나로 묶여야 한다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에서 벗어나 있다. 엄마 '숙녀(변중희)', 누나 '현(김현)', 형 '정도(신문성)' 등의 삶은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평범하거나 하찮아 보이겠지만, 캠코더의 줌인 화면처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이들 역시 자신만의 삶이 따로 있고 어떻게든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진무가 엄마 집의 낡은 전등을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준 다음 점프 컷으로 암전, 누나의 일상, 암전, 형의 일상을 단편적으로 모아 완성한 시퀀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스크린 밖에 있는 촬영 카메라의 화면 안에 캠코더 화면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캠코더 영상과 아버지의 오래된 카메라 속 사진 간의 질감적 차이는 각자의 삶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물음표나 지배하고 있는 공기가 교차할 수 있지만, 결국 하나로 수렴할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 점차 해결될뿐더러 가족은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이해하거나 삶에 생긴 간극을 채울 수 있게끔 인도하는 존재임을 지각하게 된다.

후반부에 진무의 가족은 아버지의 무덤을 이장하려는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진무가 조용히 나서서 해결하고, 유골을 상자에 담아 앞장서는 장면은 비록 삶은 다른 삶과 합치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지만, 조금이라도 자기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작은 빛이 지닌 따뜻함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조민재 감독은 자전적인 고민을 우직하게 끌고 가는 자세를 잃지 않고, 이를 진솔함으로 승화했기에 <작은 빛>이라는 또 다른 진정으로 아름다운 독립영화가 완성된 게 아닐까 싶다.


  • 2
4.5
작은 빛, 큰 따뜻함.

작은 빛을 품고, 큰 따뜻함을 안겨주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 <작은 빛>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가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일상의 행복과 평범함의 행운을 그저 넌지시, 천천히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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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은 평범하다. 아니, <작은 빛> 속 진무는 평범하다. 왕년에 춤깨나 췄던 정도도, 귀찮아 짧게 깎은 머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주방 일을 하러 가는 숙녀도, 홀로 아들을 키우며 잔소리가 늘어가는 현 역시 마찬가지다.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카메라를 만나서, 나아가 진무의 캠코더를 만나서 특별해졌고 특별해진다. 사실 진무의 뇌수술로 인해 캠코더에 담기기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엔 극적인 서사도, 폭발하는 감정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보다 애틋하고 아리며, 아득히 잊고 있던 기억을 조각조각 불러 모은다. 진무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미래를 대비하며 캠코더를 들었지만 정작 캠코더에 담긴 이야기는 금세 과거가 되어버리는 바로 지금, 현재였다. 그 현재가 완벽히 과거가 되어갈 때 진무는 가족들과 캠코더에 담긴 영상을 본다. 그 '작은 빛'을 내뿜으며 네모나게 간직된 과거를 본다. 그리고 웃는다. 이내 아팠던 아버지에 대한 희미한 과거 역시, 서툴게 치유된다. 아픈 몸을 위해 시작한 기록이었으나 아픈 마음을 완벽히 치유한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역시 어느샌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행복을, 평범함의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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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거리는 형광등 그 사이로 그들을 바라보며, 나와 내 가족을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 가족을 만나 가정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삐걱거림을 떠올렸다. 분명히 아팠고, 앞으로도 아플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불행하다 느껴온 시간 속에서 반짝이는 고마움이 존재할 거라는 것. 반짝이는 그 빛과 함께 흘러가 버린 과거를 붙잡아 웃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이다.


  • 2
3.5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기억하기

뇌수술을 앞둔 진무(곽진무)는 수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캠코더를 구입해 이것저것 촬영한다. 그의 촬영 대상은 가족. 나름 복잡한 가족사를 가진 가족이기에 이들이 한데 모이는 것부터 각자의 이해관계까지 모든 것이 조금씩 다르다. 진무는 어머니를 시작으로 누나, 이복형 등을 만나고, 이들을 캠코더에 담는다. 그 과정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서울독립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독립영화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작은 빛>은 가족을 다룬 작품이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가족 드라마로 구분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따라가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리듬은 잔잔하지만, 캠코더로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담는 진무의 행동은 발버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진무의 가족관계가 하나씩 밝혀진다. 이들은 ‘아버지’라는 공통분모로 묶인다. 진무와 누나는 아버지의 자녀이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아내였고, 이복 형도 아버지의 자녀이다. 진무가 처음 찾아가는 가족은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낡은 방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촬영된 사진은 없다. 각자의 얼굴이 촬영된 사진이 조금은 산만하게 걸려 있을 뿐이다. 연락조차 서로 잘 주고받지 않는 이들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것은 오래전에 사망한 과거, 즉 아버지이다. 가족들은 땅에 파묻힌 아버지의 관에 나무뿌리가 들어와 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딘가 뒤숭숭해한다.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틀을 만들어낸 근원임과 동시에 가족을 해체한 계기이다. 땅속에 파묻힌 아버지는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것이거나 회피의 대상이다. 진무는 캠코더로 가족들을 촬영함으로써 흩어져 있는 이들을 별자리처럼 잇는다. 캠코더의 빛, 점멸하는 형광등 사이로 드러나는 각 가족들의 식사 장면, 방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는 아버지의 카메라 플래시는 가족이나 아버지라는 희미한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작은 빛>이 아버지라는 과거와의 화해나 가족들의 봉합을 테마로 삼은 작품은 아니다. 이미 흩어진 가족은 다시금 재결합될 수 없다. 미봉책에 가까운 봉합 대신 영화가 선택한 길은 청산이다. 영화 후반부, 드디어 모두 모인 가족은 아버지의 무덤을 파내 이장하려 한다. 관을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와 함께, 그 뿌리에 뒤섞인 것 마냥 20여 년의 세월 동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시신이 드러난다. 시신을 보고 인부들은 손사래를 치며 산 밑으로 내려가지만, 진무는 덤덤하게 시신을 수습하고 상자에 담아 옮긴다. 아버지를 뿌리에서 분리해 다른 곳으로, 축축한 땅에서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는 이 과정은 아버지에 대한 긍정이나 화해의 순간이 아닌 청산의 순간이다. 가정폭력을 일삼다가 일찍 죽어버린 아버지는 그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간에 그가 가족을 형성하는 것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 찝찝한 근원을 회피하거나 방치하는 대신, 그것을 파내고 청산한다.


진무가 캠코더로 가족들을 찍는 행위는 과거로 향하는 지금을 붙잡아 두려는 발버둥이다. 기억을 잃을지도 모르는 그가 기억이나 회상에서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캠코더로 지금을 기록하는 행위는 아버지에 대한 청산과 공명한다. 진무는 캠코더로 촬영한 내용을 가족들과 함께 본다. 캠코더를 열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작은 빛으로 과거를 보는 것은, 형상이 남아 있는 시신을 파내어 밝은 곳으로 들고 간 뒤 다시 파묻는 이장의 행위와 유사하다. 진무는 과거를 붙잡아 현재에 머물게 하려고 캠코더를 든다. 그 과정 속에서 이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과거를 청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과거는 진무의 캠코더에 담긴 아버지의 카메라 속 사진들 정도만으로도 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얼굴들이라는 희미한 형상들을 비추는 작은 빛 말이다.


  • 4
4
몽타주를 할 수 없는 세계

조민재 감독의 <작은빛>은 감독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찍은 자전영화로 기억을 어떻게 카메라로 찍느냐의 문제를 다룬다. <작은 빛>은 어쩌면 평범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자신의 가정사를 기반에 두고 있다. 이는 (메이저리티라 부를 수 있는) 역사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 서울 바깥에 있는 가장 보통의 서민들을 비추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벌새>가 성수대교 붕괴라든가 김일성의 죽음을 플롯화시키지 않아 일부러 그것을 흘려보냈듯 <작은빛>은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촛불시위라는 이벤트를 흘려보낸다. 이처럼 <작은빛>은 가장 내밀하고도 보편적인 가족서사를 파고드려는 듯 보였다. 감독은 개인들을 큰 역사의 맥락으로 편입시키기보다 기억을 찍는 시선을 택한다. 고로 이 영화는 가족서사로서도 현시대 한국을 들여다보는 텍스트로서도 큰 매력이 없다. 다만 형식실험만 그 자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작은빛>은 몽타주의 영화가 아니라 짜깁기의 영화로 시간을 통합시키기보다 시간을 분할해 이어붙인 영화다. 이는 자칫하면 단조로울 수 있는 편집이나 감독은 이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끊어내, 새로운 리듬의 점프컷을 만들어낸다. 이는 영화의 내용과 이어진다. <작은 빛>은 뇌수술을 받기로 한 36살의 진무(곽진무)가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소식에 가족들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감춰온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구조의 이야기다. 이들의 목소리를 찍으며, 그 가족 너머에 유령처럼 겉도는 아버지의 서사를 되살린다. 이를 형식으로 만드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지만 그것이 매번 분절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사건이라는 것을 차단시킨다. 이는 계속 기억이 혼동되는 진무의 내면과도 이어진다. 이같은 형식은 초반부에는 흥미로우나 반복되면서 그 일정한 틀을 잃어간다. 그리고 끝내 카메라를 통한 몽타주 장면에 다다랐을 때 감동할 수 있지만 그것을 견디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할뿐이다.

몽타주할 수 없는 가족의 분열과 그 사이로 드러나는 아버지의 기억들을 드러내면서 감독은 "동맥을 끊는" 진무와 나무뿌리를 끊어내는 "아버지"를 일체화시킨다. 그리고 진무는 그 전에 아버지의 무덤에서 머뭇거리며, 차례상을 지내지 못하는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 후자에서 전자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가족이 몽타주일 수 없기에, 카메라라는 기적으로 몽타주를 할 수밖에 없다면 이 결말은 오히려 흠이다. 그 기억의 책임을 진무에게 넘기며, 그 기억의 책임은 동시에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이 작은 빛을 마주하기까지 너무 긴 어둠을 지나왔을 관객은 이 밝음을 견딜 수 없다.


  • 2
4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상적인 데뷔작 <환상의 빛>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조금 놀랍다. 이 영화의 소재와 촬영 방식, 호흡 등은 분명히 빚진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특히

1. 역광으로 찍은 업장에서의 작별,
2. 인물이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아파트 복도를 한참동안 비추는 카메라,
3. 일렬로 산을 내려오는 일행의 모습

등은 아무리 생각해도 직접적인 인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환상의 빛>과 다르며, 정말로 '작은 빛'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나는 그 지점이 컷이 잘못 붙은 것같은(물론 의도한 편집일 것이다) 장면, 혹은 카메라가 잘못 움직인 장면마다 자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중에서도 편집에 관하여.영화는 진무가 카메라를 발견하는 같은 시간의 이야기를 굳이 나눠놓으며, 새로 간 형광등을 테스트할 때마다각 가정의 풍경이 직후에 붙는다. 조금 투박하긴 하지만 영화는 사건의 순서를 정직하게 나열하는데, 왜 하필이면 두 장면일까.


순서대로 세차작업을 하는 작은형, 홀로 아이를 키우는 큰누나, 가족의 선산을 관리하는 큰아버지의 집에 방문한 진무가 상상의 캠코더를 놓고 왔다고 가정해보자. 세 번의 플래시와 세 번의 형광등 점멸. 과거(카메라)와 현재(캠코더)를, 시간(카메라)과 공간(캠코더)을, 마지막으로 죽음(카메라)과 삶(캠코더)을 전부 하나로 엮어내는 이 장면은 생각할수록 소중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던 내 오판이었다. 감히 이 영화를 올해가 다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품에 안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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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작은 빛'은 중대한 수술을 앞두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에 캠코더를 들고 가족들을 찾아가는 주인공에 대한 영화다. 유명한 감독이나 출연진 없이 상당히 조용하게 개봉한 이 영화를 보며 김대환 감독이 많이 떠올랐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을 한명 한명 찾아가며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하는게 거의 다인 영화다. 수술이라는 극적 긴장감을 초반에 영리하게 설정하는 영화는 그 이후에는 주인공과 함께 가족들을 하나 하나 만나가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 '철원기행'과 '초행'의 김대환 감독처럼 영화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형식이다. 하지만 김대환 감독의 영화들과는 분명한 차이점들은 있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대화들로 가득차있다고 해도, 김대환은 연출가로서 씬을 통제하고 디자인했다는 느낌이 들고, 그런 계산을 한 뒤에야 배우들의 연기와 대화를 롱테이크로 담았다는 인상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듯하다. 조명은 소품과 자연광 외에는 거의 안 쓰려고 하는 듯하고, 후시 녹음이나 개인 마이크보다는 현장의 울림까지 모두 담은 녹음을 그대로 사용한다. 촬영 쪽에서는 실내에서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도 공간을 모두 볼 수 있는 고정된 광각 시점을, 실외에서는 망원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다큐멘터리언 같은 시점을 사용하며, 주인공이 직접 촬영한 캠코더 씬들을 제외하면 클로즈업은 굉장히 적다. 일상을 찍는 주인공의 일상을 찍는 다큐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숏을 꽤 길게 끌어가는 김대환과 달리 이 영화는 숏이 긴 편이긴 하지만 숏-리버스 숏 같은 형식을 위해 컷도 좀 더 자주한다. 하지만 그런 컷들 때문에 커버리지로는 나올 수 없는 구도들을 노출시키며 사실주의의 환상이 깨진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클로즈업은 거의 주인공의 캠코더에서만 나온다. 나머지 씬들은 식사와 일상적인 대화, 또는 침묵 위주로 담고 있지만, 캠코더는 이들의 얼굴 가까이로 인물들과 관객들을 데려다주며, 인물들의 속마음과 하지 못한 말들을 전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런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영화는 별 의미 없는 일상적인 대화와 긴 침묵들 속에서도, 서로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가족들이 간직하고 있는 서로에 대한 깊은 가족애를 확인시켜준다. 여기에는 모든 배우들이 보여주는 정말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호흡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이런 연출과 시도가 성공한 것 같다. 특히 주연인 곽진무 배우의 연기는 올해 독립영화계의 큰 발견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와 호흡 덕분에 영화가 담고 있는 일상과 암묵 속의 가족애가 그만큼 진실되게 느껴지며, 흩어진 가족이 다시 소통하고 이어지고 화해하는 가족 드라마가 잔잔한 여운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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