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Green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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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1962년 미국,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교양과 우아함 그 자체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의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돈 셜리는 위험하기로 소문난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투어 기간 동안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토니를 고용한다.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와 교양과 기품을 지키며 살아온 돈 셜리 박사. 생각, 행동, 말투,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그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그린북’에 의존해 특별한 남부 투어를 시작하는데…

예고편


감독/출연

피터 패럴리
피터 패럴리
감독
비고 모텐슨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마허샬라 알리
린다 카델리니
린다 카델리니
마이크 해튼
마이크 해튼
디미터 D. 마리노프
디미터 D. 마리노프
세바스찬 매니스캘코
세바스찬 매니스캘코
브라이언 스테파넥
브라이언 스테파넥

리뷰

97.38%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3% 97%
4.5
60년대 미국 남부 여행을 위한 아픈 지침서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을 실감 나게 그린 <그린북>


우리는 어딘가 여행할 때, 여행지에 관한 안내서나 지침서를 참고한다. 잘 모르는 지역을 방문하여 좀 더 편안하고 좋은 호텔,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기 위해 이런 여행 안내서의 정보는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가는 여행지가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여행 지역에서 보다 안전하고 문제없이 여행할 수 있는 호텔과 음식점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미국의 1960년대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여전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시기다. 특히나 미국 남부 쪽의 흑인들은 여전히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았으며, 갈 수 있는 장소도 정해져 있었다.



영화 <그린북> 은 미국 1960년대를 배경으로 그 당시 미국 내 여러 생각과 판단, 이념이 혼재되어 있던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탈리안계 미국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일하던 바 시설의 수리로 인해 몇 개월간 직장을 잃게 되어 돈벌이가 필요하자 흑인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 박사(미허샬라 알리)의 운전수 일에 지원한다. 돈 셜리 박사가 면접 본 많은 후보들 중 토니를 선택하게 되면서 토니는 흑인을 차 뒤에 태우고 미국 남부 공연 투어를 떠나게 된다.






백인과 흑인을 대표하는 인물, 토니와 셜리 박사


영화 속 토니 역시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흑인에 대한 편견이 있는 인물이다. 영화는 초반 토니가 집에 일하러 온 흑인 수리공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그와 그의 가족이 어떤 태도로 흑인들을 대하는지 보여준다.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나)는 흑인에 대한 반감이 그렇게 크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는 수리공들에게 시원한 주스를 한 잔씩 대접한다. 반면 그들이 마시고 놓아둔 컵을 싱크대에 놓고 간 걸 본 토니는 그 컵을 세 손가락으로 겨우 들어 쓰레기 통에 버린다. 그리고 TV를 보던 가족들은 흑인 수리공들에 대한 나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이 모습들은 그 당시 미국 내 인종차별이 각 가정의 삶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토니의 가족을 비롯한 여타 일반 가정들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건 그 당시 미국 사회 내 공공연히 인식되는 일종의 관념적인 인식이었다. 흑인들은 더럽고 문제를 일으키며, 백인 가정과 섞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일종의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흑인의 생활 반경과 백인의 생활 반경은 서로 완전히 섞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무시했던 백인들이 아주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영화 내내 토니의 행동으로 증명된다. 토니는 허풍이 좀 강하고 사소한 예의가 없지만, 그가 일반적으로 나쁜 인물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을 중요시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앞에 나서 그 문제를 돕는다. 그와 그 가족이 흑인들에 관해 나쁜 판단을 하는 것은 그 당시 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 당시를 살던 대부분의 백인들은 그런 편견 속에 평생을 지냈다.



반대로 흑인의 상황은 어땠을까. 돈 셜리 박사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그 재능을 인정받아 백악관 공연도 두 번이나 한 인재다. 그렇게 인정받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인 영역에서는 여전히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박해당한다. 단지 얼굴색이 검다는 이유로 백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호텔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는 그런 사회적 환경에서 평생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차분히 그 상황을 피해 가거나 무시한다. 특히나 굉장한 도덕주의자인 그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도덕적인 룰에 위반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 특히 백인에게 트집 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전복된 관계 속에 체험하는 흑인 차별


토니는 운전사로 셜리 박사와 공연을 떠나는 모습은 그 당시 시대상황과 반대되는 전복된 관계다. 그래서 토니는 영화 초반 내내 셜리 박사를 이동시키는 역할만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맨 처음 셜리 박사의 짐을 싣지 않고 집사에게 시키는 장면이다. 이는 그가 어떤 태도로 그 일을 할 작정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토니는 영화 중반까지 그저 운전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셜리 박사는 그런 태도의 토니와 말을 섞지 않는다. 토니가 말을 걸면 대부분 단답형이고,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토니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소변을 아무 곳에나 할 때 그걸 바로 잡아 주는 건 늘 셜리 박사의 몫이다. 셜리 박사의 도덕적 판단은 일견 답답해 보이지만 그런 조심성이 그를 흑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시켜왔다.



영화는 이 두 캐릭터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아주 세심하게 보여준다. 특히나 두 캐릭터 모두 미국 내에서 주류였던 부류가 아니었다. 토니는 백인이지만 이탈리아계 이주 가정 출신이고, 바에서 문제 해결 등을 도맡아 하지만 특별히 가진 기술이 있는 인물은 아니다. 반면 셜리 박사는 매우 성공한 피아니스트이고, 부유하지만 흑인이다.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여행할 때 그린북을 참고해야 하고 백인이 가는 장소에 쉽게 갈 수 없다. 또한 그는 성공한 흑인으로서 일반 흑인과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흑인 사회 내에서도 어울리지 못한다.



두 캐릭터를 살리는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 앙상블


이렇게 사회적으로 고립된 셜리 박사는 그가 처한 사회적 위치 때문에 더욱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으로 채찍질하게 되고, 주변 가족들과도 쉽게 연락하지 못한다. 그의 그런 고독감은 배우 미허샬라 알리의 얼굴로 고스란히 표현된다. 영화 초반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캐릭터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은 그가 호텔 방에서 혼자 위스키를 들이킬 때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로 또렷이 드러난다.



토니를 연기한 배우 비고 모텐슨도 훌륭한 배우다. 그는 몸집까지 불리며 이탈리안계 미국인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껄렁한 말투와 행동, 야구에 열광하는 모습 등 그는 미국 내에서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이탈리안계 미국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토니가 셜리 박사의 연주를 처음 들을 때 리듬을 하며 고개를 흔들고, 그의 표정이 환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그 캐릭터가 서서히 변해 나갈 것이라는 걸 표현해 낸다. 그가 가진 특유의 얼굴 주름들은 마치 계산된 것처럼 셜리 박사와의 관계가 변할 때마다 미묘하게 흔들린다. 갈등이 깊어질 때 주름이 늘어나고, 관계가 좋을 때 확 펴진 모습이 그의 감정을 관객에게 체감시킨다.






영화는 로드무비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점점 남부 지역으로 내려가면서 사회적인 편견은 심해지고 백인인 토니까지 흑인과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흑인들과 같이 부당한 판단을 받는다. 게다가 토니가 이탈리안계라는 이유로 순수 미국 백인에게 무시당하는 장면은 그 당시 인종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즉흥적으로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대단한 건, 그 당시에 벌어질 법한 인종차별에 대한 사례들을 아주 차분하게 하나하나 영화 속에 녹여냈다는 것에 있다. 그 사례들은 영화의 전개에 맞게 서서히 강도가 높여진다.



토니와 셜리 박사의 성장 그리고 각 인종차별에 대한 시각


토니와 셜리 박사는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성장시킨다. 토니는 셜리 박사의 음악과 글 쓰는 실력을 접하며 감성적인 면을 키우고 흑인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 셜리 박사는 토니의 임기응변과 직설적인 돌파 능력 속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본다. 토니가 그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 자신에게 결핍된 가족과 같은 인종,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꾼다. 이 둘의 우정은 그 당시를 뛰어넘어 이 시대의 흑인과 백인, 그리고 다른 인종들의 어우러짐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은 그 당시 시대 상을 하나의 물건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선택이다. 에메랄드 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흑인과 백인이 녹색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사회적 편견이 가득한 사회를 여행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관객의 마음을 따뜻한 녹색으로 물들인다. 거기에 영화 내내 가득 채우는 연주곡들은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영화 <그린북>은 지난 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마허살라 알리)과 각본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 각본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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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기시감도 문제가 되지 않는 '그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남자. 그리고 이어지는 두 남자의 여정. 이것만으로도 <그린북>은 충분히 상상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상상 속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부자와 빈자, 교과서 같이 반듯한 옷매무새와 말투, 그리고 껄렁한 말투와 마초 같은 몸짓들, 정적인 선과 동적인 선, 그리고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때의 모습까지도 상상의 모습을 벗어나기는 커녕, 거의 상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영화는 안전하게 끝마친다. 모든 것이 예상되는 두 남자의 대치의 모습은 가장 쉽게 소비되는 버디무비의 전형 그대로다.

아직도 흑백의 유색인종 차별이 만연한 1960년대 아메리카.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흑인과 나이트클럽에서 몸을 쓰는 허드렛일로 가족을 부양하는 백인, 이 두 사람의 대칭은 이미 쉽게 소비되는 영화속의 전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온갖 낯익은 기시감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짧지 않은 130분이라는 런닝타임 동안 그렇게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설정과 이야기들은 심심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온갖 기시감들에 대한 거부감 조차 들지 않는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린북>은 그렇게 흔히 소비되는 두 남자의 버디무비의 이미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영화속 에피소드들과 그들의 주고받는 대화들 역시 헐리우드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전형이지만, 그러한 장치속에서 당시의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함께 사회적 약자와, 삐뚤어져버린 사회적인 편견, 그리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포용하게 되는 이야기의 선들을 따뜻한 시선들로 채워넣는다. 특히 그 많은 소재들에 어느 것 하나에만 치중하지 않은 채 모든 것들을 아우르려는 시선들이 착하고 이쁘기 까지 하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러한 기시감에도 불구 하고 그 두 남자의 대화에 빠져들고, 그들의 괜한 이야기에도 몸짓과 눈짓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다.

걸출한 두 배우의 연기력은 지금껏 보아온 수많은 버디무디 중에서 가장 빛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순간순간을 거처 서사를 이루게 되는 어느 한순간도 허투로 보여지지 않는다. 영화는 거의 두 배우들의 대화로 이루어 져 있지만, 흔히 범해지는 거창하게 무게만 잡으려는 대사나, 되도 않는 유모로 소비되어 실제로는 무슨 뜻인지도 이해할 수 없는 '속빈' 대사로 결국 '아무말 대잔치'가 되버리는 시간들을 전혀 낭비 하지 않는다.

130분이라는 꽤 긴 시간동안 결코 어느 한 장면도 불필요하게 소비되어 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로써만 풀어내거나, 격렬한 몸으로만 진행되는 일방적인 일도 없이 몸과 행동이 모두 같이 반복적으로 소비하면서 관객들에게 이 뻔하고 전형적인 이야기에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는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두 주연 배우인 비고모텐슨과 마허샬라알리는 이미 출중한 그들의 이름값을 넘어 어쩌면 인생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들을 뽐낸다. 특히 거대한 몸을 일부러 불린 것 같은 비고모텐슨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덕분에 이둘의 모습만으로 관객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더 거칠거나, 더 자극적이여서 쉽게 호불호가 갈릴만한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한 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이야기는 두 주연배우의 힘으로 더욱더 빛을 발하면서 결국 <그린북>이라는 멋진 결과물을 낳게 된다. 정말 멋진 '그들'이다.

이 영화는 두 배우들과 동행하게 되는 멋진 로드무비이기도 한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미국인이였다면, 아니 미국 남부의 지리만 어느정도 알았다면 아마 이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고 공감이 됐을 것같다. 영화속에서 끊임없이 남부의 지명들이 나오는데 결코 그 지명에 대한 의미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얼마나 서운하던지.

어릴적 봤던 여균동의 <세상속으로>의 엔딩에 "북쪽으로 가자"라는 대사를 대한민국 사람들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 처럼, 이 영화속에서의 지명도 왠지 그러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감독이다. 세상에나, <덤앤더머><킹핀><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등등 화장실 유모가 난무하는 영화를 만든 피터패럴리가 <그린북>의 감독 이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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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린 북

01.
영화 <그린북>을 봤다.
영화는 흔히 보는 ‘버디무비’형태를 갖는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인물의 매력에 관객이 동기화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극은 그 동기화를 굉장히 잘해낸다. 쉽게 갈수 있는 선악의 명백함으로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는 지점이 좋게 보인다. 극속에는 많은 메세지를 던지는 말들을 많이 한다. ‘편견에 맞서는 용기’ 같은 것들 말이다. 무엇이든 골라잡아 그 메세지를 주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유일 것이다.

02.
나는 영화의 주제를 ‘자아찾기’라고 하고 싶다.
영화는 명징하게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이민온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토니 발레롱가’는 클럽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겨우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 이에 반해 돈 셜리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그때, 흑인으로써 클래식피아노를 연주하며 홀로 살아간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의 백인이라는 사회적 장벽(?)에 진입할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 살아갈 가치관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영화 속에서는 어느쪽이 올바른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두사람은 서로에게 배운다. ‘용기를 내는 법’과 ‘편견을 버리는 법’에 대해서 말이다.


02.
‘새옹지마’ 라는 말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이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동일한 하나의 행동은 좋은 결과를 혹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삶에 대해 속단을 할수 없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바닥에 주웠다 주장되는 돌을 갖다 놨다고 허풍을 치는 토니와 그것을 알면서 속아주는 셜리를 보며서 말이다.
그 돌이 가져다 주는 행운에 대해, 어리석으니 진실함 믿음에 대해서라고 해야할까?
적어도, 그 둘의 불화를 초래했던 소재가 그 ‘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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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계선의 사람들

<그린 북>의 세계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선들은 무수히 많은 형태로 영화 속에서 존재한다. 선 안의 사람들과 선 밖의 사람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가지고 기능되고 규정되는 이들이다. 이것은 인물이 서있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돈 셜리(마허 샬라 알리 분)는 자신의 방과 무대, 토니가 운전하는 차 안과 같이, 선 안의 공간에서는 온전한 ‘시민’이자 뮤지션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선 밖의 공간에서는 공연하러 온 장소에서조차 화장실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흑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렇듯 명확한 선이 그어진 세계에서, 피터 패럴리가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세계의 규칙과 어긋난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노동자지만 이성애자이자 백인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와 미국 상류층 예술가이지만 동성애자이자 흑인인 돈 셜리는 각각 선 안의 존재로도, 선 밖의 존재로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하는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린 북>을 보고 전형적인 할리우드 버디 무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작품의 내러티브 구조가 그런 지적을 받아도 무방할 정도로 정통적인 버디 무비의 그것을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그린 북>의 표면적인 서사는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남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한 배를 타는 내용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감독은 경계선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이것이 단순한 장르의 관습에 기댄 타협이 아니라는 것을 힘주어 말한다. 그는 세계에 여러 가지 선을 그어놓은 다음, 다층적인 의미와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이 진부한 서사 구조 안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경계선의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 앞에 놓인 카메라는 각자 자신이 처해있는 처지와 시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토니는 흑인을 혐오하고 돈은 무례를 혐오한다. 이렇듯 드러나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는, 외형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내형적인 차별, 더 나아가 구조적 차별을 감각하게 만든다. 토니와 돈이 차 안에서 치킨을 같이 먹는 장면을 보도록 하자. 이 장면은 서로의 계급적 편견과 백인 사회가 흑인 사회에 가지는 인종적 편견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돈이 끊임없이 토니의 발음을 교정하고 이름까지 줄이려고 하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이탈리아 출신으로서 가지는 정체성에 대한 돈의 몰이해는, 그들의 계급적 차이에서 발생되는 차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주류 백인 사회가 토니와 같은 비주류 백인들에게 억압과 차별을 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후반부 백인 경찰이 토니에게 가하는 행동으로써 증명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몰이해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같은 선상의 경계선에 서있는 인간들임에도, 서로의 편견 때문에 그 사실이 은폐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 있다. 앞서 썼듯이, 그들은 경계선에 서있는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그들이 서있는 층위는 같은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류 백인 사회의 구조적 훼방 때문에 그들이 같은 층위에 있는 인간들이라는 것은 은폐된다. 심지어 같은 인종과 계급을 가진 이들에게도 이것은 적용이 된다. 돈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임에도 불구하고 (토니가 ‘당신네 음악’이라고 칭하는) 대중음악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흑인 농부를 바라보는 돈의 모습은 흑인임에도 흑인 사회를 모르게 되는, 구조적 차별이 어떻게 관계를 은폐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바꾸어 말하면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에게도 관통하는 지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토니가 흑인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 것도, 돈이 프라이드치킨에서 맛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도 모두 그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감독은 서로가 가지는 차이와 차별의 장막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렇기에 연대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경계선의 인간들은 진부한 서사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전형적인 세계 안에서 비전형적인 존재들, 바꾸어 말하면 명확한 선이 그어진 세계에서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이 등장함으로써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그린 북>이 전통적인 버디 무비 구조를 차용하는 것만으로는 대중적 타협이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아니, 오히려 미덕이라고 말하고 싶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대중적 타협은 역설적으로 인물들의 연대에서 등장하게 된다. 둘은 같은 층위에 있지만, 당하는 차별과 억압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체험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연대에 치중한 나머지 그것들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린다. 덕분에 둘은 ‘피해자 경쟁’을 하진 않지만, 가해자성을 ‘교환’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문제의식은 개인적 차원으로 쪼그라든다. 영화가 구조적 억압에 대해서 밝혀놓으면서도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것은 개개인의 연대와 대화에 방점을 찍고 설득하기 위한 대중적 타협의 산물이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자는 것’이다. 물론 당위 자체로만 따지면 저 말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와 결합하면서 영화는 뒤틀어져 버린다. 내가 돈과 토니의 웃음을 마냥 행복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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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 배우가 제대로 살려낸 두 남자의 특별한 우정

연이어 보석같은 영화를 만나고 있어 그저 행복한 요즘이다. 시사회로 만나 본 내년 1월 10일 개봉예정영화 <그린 북>도 그중 하나!! 너무나 좋았기에 빨리 재관람을 하고 싶어 2019년을 기다리고 있다나 뭐라나~ 그만큼 진심으로 강추하는 영화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달랐던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 영화라고 하면 살짝 뻔해보일 수도 있지만, No No~ '비고 모텐슨'과 '마허샬라 알리'라는 두 배우를 만나 제대로 특별한 영화로 거듭났다. 영화를 보는 순간은 물론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질거라 장담해본다.



1. 특별한 실화, 더 특별한 영화


이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보통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니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거겠지만, <그린 북>은 여러모로 더 특별하고 놀라웠다.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흑인과 백인의 우정이라니~ 이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데, (스틸컷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시대의 고용-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기까지 했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토니와 셜리의 모습을 '진짜 그랬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제대로 표현해준 두 배우 덕분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 영화!! 게다가 엔딩크레딧 직전 전해지는 그들 우정의 후일담은 절로 미소를 부른다.



2. 특별한 실화, 더 특별한 영화


이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 보통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니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거겠지만, <그린 북>은 여러모로 더 특별하고 놀라웠다.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흑인과 백인의 우정이라니~ 이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데, (스틸컷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시대의 고용-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기까지 했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토니와 셜리의 모습을 '진짜 그랬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제대로 표현해준 두 배우 덕분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 영화!! 게다가 엔딩크레딧 직전 전해지는 그들 우정의 후일담은 절로 미소를 부른다.


또한, 토니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의 문구를 셜리가 대신 읊어주는 장면도 웃음+훈훈 그 자체이다. 툭하면 욱! 하고 주먹을 쓰는 이탈리아 남자지만 누구보다 가정적이기도 한 토니는 궁시렁대면서도 아내의 요청에 따라 편지를 쓴다. 허나, 그는 예사로 철자를 잘못 쓸만큼 무식하고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반면 투어 중 연락할 가족 하나 없는 셜리는 오히려 편지에 담을 감성에 정통하고, 당연히 철자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투어에 참여하기 전 토니라면 당신이 뭘 가르쳐! 라며 발끈했을텐데, 오히려 고분고분 잘 받아 적는다. 심지어 투어 막판 일취월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지.

영화 <그린북>은 내내 이런 식이다. 유머러스한 장면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민감하고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겁먹지 말라고 말해주는 느낌? 그래서 이 영화가 특히 더 좋았나보다.



3. '그린 북'이 뭔고 했더니..


투어를 떠나는 날 아침 음반사 관계자들이 '토니'에게 전해주는 책의 제목이 '그린 북'이었다. 흑인 여행자의 안락을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라나? 흑인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들 중 그나마 쾌적한 곳을 안내해주는 책자라고 보면 된다. 영화의 제목이 이것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순간!!

누누히 말하고 있지만, 겁먹지 마시라~ 이 영화의 분위기는 결코 어둡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는 이 시기이기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라는 식으로 정말 부드럽게 전달해준다.



4. 매력폭발 비고 모텐슨


나에겐 <반지의 제왕> 아라곤으로 익숙한 배우 '비고 모텐슨'이 새로운 인생작을 만난 듯 하다. <반지의 제왕> 후 그의 영화를 꾸준히 챙겨 보았지만, 좋았던 건 2016년 작인 <캡틴 판타스틱> 뿐! 허나, 영화가 좋았던거지 영화 속의 비고 모텐슨이 빛이 났냐하면 그건 아니었다는 거~

하지만 <그린 북> 속 그는 달랐다. 첨엔 어마어마한 덩치로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데다, 어우~ 싶은 먹방에 절로 고개가 저어졌는데 볼 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남다른 우정을 지켜 나가는 상남자 '토니'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준 비고 모텐슨, 오랜만에 제대로 매력 폭발했다. 2018 전미비평가위원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단다. 인정!!



5. 애정배우가 될 듯한 마허샬라 알리


2017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빛나는 '마허샬라 알리'는 계속해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배우이다. 작년 나의 최애영화 중 한 편인 <히든 피겨스>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영화 속 캐릭터가 너~무 멋져서 단번에 반함! 그후 그에게 각종 시상식의 트로피를 안긴 <문라이트>를 통해 다시 봤는데, 역시나 또 멋짐! 너무 잠깐만 나온 게 아쉬울 정도였다. 얼마 전 개봉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선 목소리 연기까지 해낸 이 배우는 영화 <그린 북>에선 멋드러진 피아노 연주까지 선보인다.

그간 볼 수 없었던 까칠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이 왜 이리 잘 어울리는지~ 거기다 차별에 맞서는 용기와 친구를 위한 노력까지 아끼지 않는 '셜리' 역시 멋진 남자!! 그를 연기한 마허샬라 알리도!!



-- 굳이 주제의식따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일단 보는 재미가 충만한 것 만으로도 추천하고픈 영화 <그린 북>이다. 피부색은 기본, 성격부터 머릿 속 지식(!)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던 토니와 셜리가 점점 친해지는 과정이 재미와 함께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비고 모텐슨과 마허샬라 알리라는 배우가 맛깔나게 표현해주어 더욱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내년 1월 10일 개봉하면 당연히 재관람할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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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백인'의 회고담

<덤 앤 더머> 등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 오던 피터 패럴리 감독의 첫 드라마 장르 영화인 <그린 북>은 천재적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와 그의 운전수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상류층 흑인과 하류층 이탈리아계 백인의 이야기를 통해 휴머니즘적인 봉합을 선보인다. 문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이 돈 셜리의 유족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작되었으며, 돈 셜리에 대한 대부분의 묘사가 실제와 다르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와 실제는 별개라지만, 실존인물에 대한 실화를 그림에 있어서 이 영화가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더욱이, <그린 북>의 완성도는 준수한 편이지만 어쩔 수 없는 백인 감독, 백인 각본가의 시선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린 북>은 전적으로 마허샬라 알리와 비고 모텐슨, 두 배우의 연기에 기대는 작품이다. 사실 패럴리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했다. <덤 앤 더머>는 짐 캐리에게,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기네스 펠트로와 잭 블랙에게 기댄 작품이었다. <그린 북>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대신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감동할만한 드라마라는 장르를 선택했을 뿐이다. 문제는 이 보편성이 백인의 시선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셜리와 토니는 인종과 계급을 넘어서는 우정을 나누지만, 그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극히 백인적이다. 가령 영화 속에서 배경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등장하는 여러 흑인 엑스트라들에 대한 시선은 높은 계급-그것이 실제 계급이든 인종적 계급이든-의 사람에 의한 시혜적 시선으로 그려진다.


차라리 익숙한 클리셰 안에 있는 흑들의 대한 묘사는 인종차별에 대한 클리셰적인 묘사로 넘어갈 수도 있다.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동양계 인물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고, 이후 장면에서 동양계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토니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 동양계 인물이 소비되기만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도계로 추정되는 셜리의 집사 캐릭터 또한 가볍게 지나가고 만다. 결국 <그린 북>은 영화 속 토니, 피터 패럴리 감독, 셜리의 유족과 협의 없이 영화화를 진행한 실제 토니의 아들인 닉 발레롱가 등 백인 시점의 회고담일 뿐이다. 마허샬라 알리와 비고 모텐슨 두 배우의 열연이 가까스로 영화를 무난한 수준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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