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House of Hummingbird

87.34%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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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 중학생 은희는 방앗간을 하는 부모님 그리고 언니, 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온 가족이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고 있을 동안, 은희는 오지 않을 사랑을 찾아 섬처럼 떠다닌다.

이런 은희의 삶에, 그녀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어른이 찾아온다.

예고편


감독/출연

김보라
김보라
감독
박지후
박지후
김새벽
김새벽
정인기
정인기
이승연
이승연
박수연
박수연
손상연
손상연
박서윤
박서윤

리뷰

87.34%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13% 87%
4.5
지금의 나, 그때 나를 뺀 세상의 전부

1. (...) '은희'가 느끼는 외로움 내지는 소외감의 중요한 원천은 영화의 배경이 강남구 대치동이라는 점에서 온다. 좋은 '학군'을 찾아 모인 사람들 속에서 '부모 망신시키지 않는' 일이 중요한 가치처럼 주입되고 '서울대에 가는 일'이 마땅히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단계처럼 당연시되는 세계에서 '은희'에게는 같은 한문 학원에 다니는 '지숙'(박서윤)을 제외하면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교우'들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영화 초반,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린 '은희'의 뒤로 같은 반 누군가의 "저렇게 잠만 자고 공부 안 하면 우리 집 파출부나 하게 될 걸"이라는 말이 들린다.) 요컨대 <벌새>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 경제적 형편이 아니라 사춘기 속 호의적이지 않은 주변 환경과 관계들, 특정한 지역 사회에서의 타인들과의 비교,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세계 자체다. (...) (2019.09.02.)
('지금의 나, 그때 나를 뺀 세상의 전부'라는 제목으로 발행한 이메일 연재 [1인분 영화] 9월호의 첫 글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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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의 일부라고 믿었거나 전부라고 느꼈던 존재들이 일순간 사라지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잘리거나, 무너지는 과정들을 차례로 겪으며, 끊임없이 불화하는 세계와 부딪히며, 우리는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쉽게 주저앉지 않고 섣불리 연민하지 않으며, 공명하고 공감할 줄 알게 되며, 울고 난 얼굴로 눈을 뜨며 밥을 먹고 어제 만나지 못한 세계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가방 메고 주먹 쥐고, 여전히 궁금증을 안고. 영화 <벌새>에는 들을 수 없었던 대답들, 하지 못했던 질문들, 알고도 눈 감아야 했던 일들, 만져지는 상흔들이 있다. 이건 꼭 '은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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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01.

영화 <벌새>의 은희(박지후)는 <아비정전>의 아비와 닮았다. 아비에게 명지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



은희는 아비와 다르게 땅에 착륙하는데 성공한다. 이 착륙의 성공은 은희가 자신은 ‘표현’하며 타인을 바라보기 시작함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작점에 명지와의 만남이 있다.



02.

명지는 어떤 지점에서 은희에게 영향을 주게 된 것일까. 그건은 명지가 은희를 바라봐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존중받았기때문이라 할수있다. 극 속 은희는 계속해서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 가족, 친구, 남자친구등 말이다. 그들에게 은희는 사랑을 받고 주는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 은희는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을뿐 감정적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 행동에 대한 액션과 리액션의 관계만 지속될 뿐이다.. 그러나 명지와 은희, 그녀들의 관계는 다르다. 명지는 은희에게 자신의 힘든 모습을 내보이며 자신도 너와 같고, 은희 그녀와 다른 자들에게 섣불리 동정을 갖지 말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힘들때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렇듯 은희는 명지에게 만큼은 친구, 여동생, 환자, 여자친구, 선배, 딸. 그 무엇도 아닌 은희가 되는것이다.



03.

극에서 ‘문’이라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간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문’이라는 소재는 장벽이라는 은유를 갖는다. 오프닝에서 은희는 902호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강하게 소리치고 벨을 누른다. 그러나 그녀가 사는 집은 1002호다. 번지수를 잘못찾은 것이다 1002호에 제대로 찾아간 후에 그녀는엄마가 문을 열어준 후에야 들어간다. (그녀가 집 문을 연것이 아니라, 엄마가 문을 열어준다.)그렇게 오프닝이 종료된다. 이에 반해 엔딩은 소풍을 가는 날 학교운동장에 소녀들이 수다를 떨며 모여있다. 주인공 은희는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못한다. 초반 은희는 잠을 청하며 소통을 단절한다. 그러나 운동장에서의 은희는 같은 학교의 친구들을 쳐다보다. 그녀를 못들어가게 막았던 ‘문’으로 은유되는 장벽도 사라졌다. 그녀가 친구들과 어떻게 될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 그녀는 장벽이 사라진 세계를 유유히 걸어다닐 것이다. 또한, 은희 언니인 수희(박수연)에게 문을 열어주는 존재는 은희 뿐이다.



04.

현재 ‘그 시절 그 나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겪거나 이야기 들었을 법한 경험,이야기’들을 94년의 은희는 직접 경험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그것을 겪는 은희를 바라본다. 이 감정은 괴이하다.

이 감정의 파동은 비단 94년 은희라는 소녀에게 일어났던 것에서만 파생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순수의 상태에서 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고민을 94년이라는 시간으로 갖고 들어가는 것이다.

<벌새>리뷰를 읽으면 누구나가 하는 ‘보편적’인 단어는 아마 이 지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것은 지금의 누군가가 겪고 있을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감독 에드워드 양이 떠오른다고 이야기한다. 비슷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두 감독이 다른 이유는 인물을 바라보는 거리에 있다는 지점을 상기하고, 새로 떠오르는 감독의 세계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을 생각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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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삶과 감정의 무게를 응축한 날갯짓, <벌새>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 김보라 감독은 전 세계 영화제 25관왕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 <벌새> (2018)로 장편 데뷔하기 전부터 이와 같은 보편적인 심리를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이야기해 왔다. 전작 단편영화 <리코더 시험> (2011)에서는 리코더를 잘 연주해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 ‘은희(황정원)’를 중심으로, 이번 장편영화 <벌새>에서는 사랑을 위해 벌새처럼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중학생 ‘은희(박지후)’를 중심으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흐를 감정을 묘사했다. 전작과의 차이점이라면 보편적인 삶과 감정을 단순히 공통성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균열을 경험하는 개인을 벽에 금이 간 집과 맞물려 다루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 <세일즈맨> (2016)처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영화 <벌새>는 중학생 ‘은희’의 삶을 1994년 10월 21일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게 함으로써 묘사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특수한 사건이기에 1994년 서울만의 특정한 분위기를 전달하지만, 사랑 때문에 누구나 겪는 관계 속 붕괴와 그 후를 이야기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이기도 하다. ‘은희’는 몸집이 작지만 꿀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어서 무더운 여름 공기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은희’는 가족, 친구, 후배 등 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덕분에 뜻하는 바를 이루기 직전까지 가지만 번번이 좌절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귀 밑에 생긴 종양을 제거한 후 생긴 상처나 테이프로 가리려는 갈라진 방 벽처럼 ‘은희’의 주변에 상처의 흔적이 하나둘 기록된다.

그러다가 ‘은희’는 우연히 한자 보습학원에서 ‘영지(김새벽)’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 ‘은희’는 ‘영지’ 선생님과 약간의 거리를 둔다. 왜냐하면 14세 소녀의 눈에 ‘영지’ 선생님은 세상과 다른 눈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상처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슬픈 감정을 표출했을 때 보게 된 선생님의 모습을 기점으로 ‘은희’는 또다시 날갯짓한다. 이는 그동안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은희’에게는 ‘정말 힘들겠구나’ 혹은 ‘정말 슬펐겠구나’라는 동정에 가까운 말이 아니라 조용히 차 한 잔을 건네거나 무심한 척 나오는 작은 동작 등 위로하려 하지 않는 무언의 표현이 필요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삶은 무언가를 깨닫는다고 해서 그 이후가 영원히 평탄해지지 않고 굴곡진 길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그럼에도 성장에서 중요한 시기에 얻게 된 깨달음은 관계 속 균열을 다시 한번 마주해도 더는 무너지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영화 <벌새>는 인생에서 겪는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부끄럽지 않으면서도 대단하지 않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는 인류의 영원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삶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은희’처럼 가까이에 있어서 등한시했던 주변을 꾸준히 돌아보며 ‘영지’ 선생님이 남긴 편지 속 내용처럼 삶이란 나쁜 일이 닥치면 좋은 일도 함께 한다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매일 누군가를 만나며 무언가를 나누는 행복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1994년의 이야기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경유해 미래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영화 <벌새>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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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고 싶지 않은 일기장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처음 매겼던 별점보다
영화에 대해 생각할수록 별점이 내려간다.
여러 영화평들을 읽어봤으나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부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영화의 인물에 해 놓은 설정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오빠에게 맞고 자란 여동생, 친구와의 불화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 예민한 시기의 감성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 성장영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다.
내 일기장과 어느 부분 닮아있는 일기장일 거라고
그런데 이게 왠걸
은희라는 인물, 그리고 감독이 그리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감독의 이야기를 위해서 움직이는 듯한 인형같았다.

은희라는 인물은 감독의 주관점 바람이 아주 많이 들어간 자신의 어린시절 같다. 엄마를 부르고 엄마는 멀어져가는 그런 쓸데없는 화면들 덕이다. (2시간이 넘는 런닝타임동안 꽤 다양한 주관적 상처적 시점이 나온다.)

중학생이다. 큰 꿈도 없고, 그림은 제법 그리나 그림에 대해서 뭔가 더 해보려고 하지 않고 학교에서 날라리로 뽑혀도 별 말 없이 노래방을 가거나 , 콜라텍(그 당시에 이 단어가 맞을지 모르나)을 간다.
은희의 욕망이 그저 맞고 싶지 않다인지 아니면 내가 빛날 수 있을까인지 은희의 행동에서는 왜 그런 글을 쓰는지 단서조차 찾기 어렵다. 어떻게 빛나고 싶은건지? 뭐를 욕망하는 건지
단순히 남자친구와의 애정이 좋아지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그저 허구헌날 싸워대는 부모님과 때리는 오빠, 아빠에게 혼날 구실을 제공하는 언니 사이에서 사랑을 받고 싶은 애정결핍인건지
그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지루하게 영화를 끌고갈 뿐이다. 답답했다.

뭔가 큰 사건이 있고 주인공이 대단한 초목표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고 그런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저런 대사 한 줄을 쓰려면 그걸 뒷받침해 주는 주인공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상황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평면적인 상황들뿐이고 그 뻔한 상황들 속에서 아픈 생채기를 혹으로 표현하는 것도 지루했다.

은희의 친구또한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불화로 담배를 피는 건지
탈선을 하는 건지 은희와 어떤 연대를 맺고 있는지
그저 학원에서 히히덕 거리고 같이 트램폴린을 타고 물건을 훔치는 지극히 단면적인 관계를 아주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은희가 맺는 거의 모든 관계가 그렇게 나열된다.

가장 판타지적인 인물은 학원선생으로 나오는 역이다.
싸운 아이들에게 잘린손가락 노래를 불러줄 땐 실소가 터져나왔다.
그 당시 아니 지금과 비교해봐도 2명만으로도 선생님을 붙여주는 한자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저런 노래를 불러주면서 사상교육이라도 하려는 건지 담배를 피며 아무렇지 않게 세상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관계를 맺지 않는 원장님 말씀대로 '좀 그런' 선생이 은희에게는 스케치북을 선물해주고 인생에 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 뭐지 싶었다. 정말
상처받았을 때 내게 필요했을 법한 사람을 환상으로 그려내니까 감정이 확 깨졌다. 거기다 역사의 상처속에 사라지는 퇴장은 진짜
은희의 상처를 더 크게 보이려고 했던 것 정말 ... 최악이었다.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오빠나 언니 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이 많았다 나 역시 알지도 못한 영어가 쓰여있는 오빠의 일기장을 훔쳐본 일이 있다. 타인의 비밀스런 감정을 몰래 엿본다는 길티플래저였지만
이 영화는 자기연민에 빠져 세상 혼자인척 하는 중2의 일기장이라 다신 보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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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2018> #시사회 #스포주의

1994년 누군가의 이야기.
세계 각종 영화제 25개 부문 수상중.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던 자전적 이야기.

90년대는 그랬다.
응답해달라고 외치고 싶은 찬란한 시대임과 동시에, 돌이켜보면 야만스러움이 익숙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정폭력과 학교체벌이 빈번했고, 거리에는 공기반 소리반이 아닌 담배반 연기반이 자연스러웠다. 사소한 도둑질은 범죄 취급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교실 이데아'는 충격과 불편함을 줬고, 서태지는 우상이 되었다.

아버지가 아이들 앞에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어머니는 그 날도 저녁밥을 차린다. 남아선호사상을 근간으로 오빠는 여동생을 때릴 수 있었고, 동생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했다. 그래도 오빠는 가족의 중심이니 외고와 서울대를 목표로 온 가족의 서포트를 받았고, 여동생에게 꿈이란 잠을 잘 때 외에는 꿀 수 없었다. 오로지 '집안의 자랑' 혹은 '집안의 망신'이라는 이분법적 결과가 중요시 되던 시절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나라는 근 25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있음에 새삼 더 놀란다. 수십개의 전화번호를 외웠고, 급할 땐 삐삐에 8282를 쳤던 것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는 변화와는 결이 다르다. 해동검도와 서예학원의 반가움보다는 당시의 잔인했던 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어 이 영화가 참 교묘하고 치밀하게 잘 만들어졌다고 느꼈다.

독립영화라 할 수 있나.
버젯이 어느 정도 될까 의아할 정도로 장소, 소품, CG 등 저예산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 영화는 감독의 섬세한 고민과 세밀한 노력에 의해 완성되었다. 가장 먼저 개발되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낙후된 개포주공과 대치은마를 주요 촬영 장소로 설정하며, 당시 중학생이던 자신의 기억 속 자전적 이야기를 평범한 이름의 '은희' 라는 인물에 이입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는 인터뷰에 관객으로서 꽤나 경탄했다. 다만 주인공의 너무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으려 하다보니 다소 피로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오래 준비한 영화이니만큼 단단한 구성과 개연성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내 삶도 빛날 수 있을까?
은희 엄마가 외삼촌에게 그랬듯,
영지선생님에게 은희는 쓸쓸하게 떠나간 뒷모습까지 환히 밝혀준 등대였다. 그래서 은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충분히 '빛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여전히 너무 각박해 보일까봐. 그리고 영지선생님한테 너무 미안할까봐.


"독립영화의 탈을 쓴 영잘알 감독의 정답지 같은 영화."

"너무 잘 만들어서... 역설적으로 삭감되는 인간미."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시선, 박지후와 김새벽."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은희로부터 전해지는 삶 속 희망의 빛."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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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시사의 역사를 담아낸다는 특징이 있다. 한 개인의 일상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의식을 조명한다. 이런 구성은 개인을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깊은 공감과 이해로 그려낸다. 김보라 감독은 자신의 첫 데뷔작으로 1994년 당시 자신과 같은 나이인 소녀의 일상을 그려냈다. <벌새>는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맑지도 흐리지도 않던 은희의 일상을 통해 미시사로서의 역사를 말한다.

1994년은 군부 독재 정권의 잔재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난 시점이다.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군부독재정권의 종식을 알리는 순간이었으며 새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꿈꾸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고도의 경제성장 때문에 국민들에게 근면성을 강요하고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고가 만연했으며 인간보다 물질의 가치가 우선이 되는, 시대의 변화를 향한 열망과 일상에서 겪는 변화의 체감이 온도차를 보이는 시대이기도 했다.

14살 은희는 공부 대신 그림에 관심이 있다. 여느 중학생처럼 남자친구와 어울리는 게 좋고 공부하라는 담임선생의 말에 신물이 나며 가족보다 친구와 어울리는 게 더 즐겁다. 평범한 중학생 은희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다. 첫 번째는 가족이다. 춤바람이 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한 어머니, 학원 대신 남자친구와 놀러 다니는 언니와 그런 언니를 잡으려 드는 아버지, 똑똑하지만 성격이 나쁜 오빠와 그런 오빠에게 폭행을 당하는 은희의 관계는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서로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상처를 주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사랑과 우정이다. 둘도 없는 친구 지숙과의 다툼과 남자친구 숫기 없는 남자친구 지완과의 끈끈하지 못한 관계, 갑자기 나타나 애정을 표하는 후배 유리의 존재는 은희가 감당하기 힘든 감정적인 격화를 이끌어 낸다. 이런 영희에게 한문 학원 선생 영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은희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섬세하고 굳게 어루만져주는 영지의 위로는 존경과 사랑 사이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세 번째는 자신이다. 은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다. 또 가족 내의 문제에서 스스로 균형을 잡는 성숙한 성격도 아니다. 오빠처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고, 언니처럼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속일 수도 없는 은희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불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은희의 현재를 보여주는 소재가 혹이다. 은희는 귀 뒤에 난 혹으로 입원을 필요로 하는 수술까지 받게 된다.

이 혹은 은희가 지닌 내면의 고통을 의미하며 그 고통이 뭉치고 뭉쳐 혹이라는 형태로 형상화된다. 혹을 떼어내도 은희의 현재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1994년이 되어도 사회는 여전히 물질의 가치가 우선되고 가부장적인 강압과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이런 은희를 통한 보편적인 일상이 담아내는 당시의 의식과 시대상은 세 가지 소재를 통해 더욱 강화된다.



첫 번째는 여성이다. 은희의 가족에서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똑똑했던 어머니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였고 떡 장사를 하는 아버지에 경제적으로 묶인 존재가 된다. 어머니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건 물론 아버지가 외도를 하는 걸 눈감아 주는, 당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보여준다. 이는 은희와 언니 수희 역시 마찬가지다. 수희는 질이 나쁜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학원을 빠지고 놀러 다니면서 아버지에게 혼이 난다.

수희의 모습은 개인의 일탈처럼 비춰질 수 있지만 오빠 대훈이 아버지에 의해 명문대에 진학해야 된다는 기대감에 스트레스를 안고 있다는 점,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공부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그 스트레스로 엇나간 존재로 볼 수 있다. 은희는 대훈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폭력의 대상이 된다. 대훈의 폭행은 부모에 의해 남매간의 싸움으로 치부되고 눈앞에서 본 폭력 역시 침묵 속에 넘어가게 된다.

어머니는 은희에게 꼭 대학에 진학하라고 말한다. 대학의 로망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어머니의 못 다한 꿈을 이뤄달라는 소망의 의미보다는 대학을 나와야만 대우를 받는 현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구조에서 남성의 경제적 속박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어머니는 대학으로 보았고 은희는 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벌새다. 은희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영지는 오랜 시간 대학을 휴학했다 말한다.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영지의 휴학은 당시 대학 내에서 불었던 민주화 운동과 연관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영지는 삶이 힘들 때 손가락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를 한다. 손가락만은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희가 영지에게 불러주는 노래는 '잘린 손가락을 바라보면서'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영지가 차 한 잔과 함께 은희의 아픔을 들어주면서 해결을 위한 조언보다는 위로를 해준다는 점, 재개발에 저항하는 현장을 지나가며 그들 편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은 세상이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겨내기 힘든 공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지는 은희에게 '벌새 같은 삶'을 살아가라 이야기한다. 더 이상 맞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영지의 진심어린 조언은 제목인 벌새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벌새는 작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고 단독 생활을 한다. 또 몸 빛깔에 있어 암수가 비슷한 종이 많다. 영지는 시대의 여느 여성들처럼 가부장적인 폭력과 억압에 노출된 영지에게 이와 맞서 싸우고 스스로를 지켜내라는 인생의 조언을 건넨다. 이는 영지가 살아온 길이자 앞으로 영희가 가족 안의 여성이 아닌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다짐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성수대교이다. 1994년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인 성수대교붕괴사건은 너무나 빠르게 성장했기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겼던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번지르르한 외형에 비해 내부는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고 내면의 침식은 외부의 붕괴를 가져왔다. 은희의 가족은 떡 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고 서울 중상류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온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외도를 눈감아 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교육신화에 매몰되어 대훈의 폭력에 눈을 감아주는 부모의 모습은 내적으로는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진, 겉으로만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성장과 성장에만 매몰된 채 그 내면의 관계를 보지 못하는 한계는 도입부의 장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은희가 집을 착각해 아래층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문명의 상징인 아파트의 문처럼 서로 한 건물에 살지만 서로를 향해 단단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고도의 성장 속 가려진 인간소외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성수대교의 붕괴는 이 마음의 단절과 서로를 향한 몰이해가 얼마나 큰 슬픔과 비극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벌새>는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보내는 소녀의 내면을 보편적인 정서로 담아내면서 한 개인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감독은 당시의 의식과 사회상의 문제를 은희의 일상을 통해 그려내면서 따스한 위로와 함께 희망찬 미래를 그려낸다. 은희가 학원 책장에 걸린 책 중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고르는 장면은 영화 그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안정된 생활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크눌프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 사이의 이해와 사랑을 이야기한 이 작품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가치와 상반됨과 동시에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담아낸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감독은 아픔만이 가득한 은희의 삶에 희망찬 미래를 불어넣는다. 이 희망찬 미래는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삶이란 돌이켜 보면 항상 맑지도 흐리지도 않던 나날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 당시에는 억압과 고통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과 소중한 행복이라 여기지 못했던 순간들이 기억을 장식한다. 그래서 아픔도, 고통도, 잘못도 날이 흐리다고 하늘을 탓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작품은 그런 순간들을 품은 이들에게는 아픔을 향한 공감과 위로를, 그런 순간에 직면한 이들에게는 벌새처럼 현재와 맞서 싸우라는 조언을 건넨다. 보편적 개인의 오늘을 통해 시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하는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성장담에서 담아낼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나조차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인생의 사춘기를 통해 같은 시대의 아픔을 품은 이들을 위로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가 될 가능성을 품은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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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리코더 시험>(2011) 등의 단편영화로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린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벌새>는 2018의 한국영화 데뷔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1994년을 살아낸 중학생의 시점으로 그 시대를 담아내는 이 작품은 학벌, 가부장적 가정, 세월호 참사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안전불감증 및 불안정한 상태, 학생운동, 재건축 등 수많은 한국의 사회문제들을 자연스럽게 경유한다. 붕괴의 징후를 시도때도 없이 내비치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중학생 은희는 한문학원에서 만난 영지 선생님을 통해 변화한다. <벌새>에서 영지는 한번도 스스로 누군가와의 단절을 주도하지 않는다. 은희가 겪는 관계의 단절들은 상대방에 의해서이거나, 갑작스런 재난에 의해 발생한다.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은희가 집을 잘못 찾아가 간절하게 엄마를 부르며 문을 두들기는 오프닝 시퀀스는 그러한 단절의 상황 속에 내던져진 상황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때문에 <벌새>는 부모나 학교 선생님조차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할 망정 균열이 가고 있는 길만을 제시하고 있는 잘못된 길잡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우연히 만나 길을 알려주는 대신 어떤 길이든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 분열되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대신, 그 길을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보라 감독이 밝혔듯, <벌새>는 여러모로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특히 성수대교가 붕괴된 이후 등장하는 정지된 이미지들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후반부의 정지된 시간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에드워드 양의 정지된 시간은 단순히 인물과 극 중 사건의 정지가 아닌, 영화가 긴 시간 동안 그려온 세계 자체의 정지이다. 동시에 <타이페이 스토리>(1985)나 <하나 그리고 둘>(2000)에서 인물을 향해 쏟아지는 듯한 자동차와 빌딩이 거울과 창에 비친 형상들은 그것들이 흐르는 이미지임에도 인물을 압박해 정지시키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벌새>의 정지된 장면은 그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2018년에 제작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자연스럽게 2014년 4월 16일의 정지된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침몰한 선박과 함께 정지된 시간, 그것은 건축물의 붕괴로 인해 세계가 운동을 멈추는 <벌새>의 것과 닮았고, 그것을 연출하는 방식은 에드워드 양의 것과 닮았다.

그리고 <벌새>는 다시 전진한다. 은희는 새벽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언니와 함께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본다. 그러고 학교에 간 은희는 주변을 둘러본다. 은희의 눈길이 닿는 많은 곳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은희 또래의 학생들이 보인다. 정지상태를 바라보던 은희는 종종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텅 빈 집에서 홀로 '여러분'의 고속도로 뽕짝 버전을 틀어두고 막춤을 추는 은희는 어떻게든 움직이려 한다.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던 은희의 시선은 움직이는 또래의 사람들로 옮겨간다. 영화는 그러한 은희의 얼굴에서 끝난다. 우리 앞에 어떤 길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그 길을 뚜렷이 바라볼 수 있다는 희망이 <벌새>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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