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누

Free Mi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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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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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밴드의 보컬로 활동하던 미누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때문에 강제 추방당한다. 고국인 네팔로 돌아가 사회적 기업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한국을 잊지 못하는 미누에게 8년 만에 한국방문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한국은 그의 입국을 금지하고, 또 한 번 크게 좌절한 미누를 위해 밴드 멤버들이 네팔을 찾아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예고편


감독/출연

지혜원
지혜원
감독
미노드 목탄
미노드 목탄
소모뚜
소모뚜
소띠하
소띠하
송명훈
송명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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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리고 부디 안녕히 가세요.

<안녕, 미누>는 제10회 DMZ 국제다큐영화제(2018) 개막작이자,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2019) 한국 경쟁작입니다. 뒤늦게라도 네팔 출신 미누씨의 명복을 빕니다. 강제추방당한 한국을 멀리서 그리워하며, 다시 대한민국 땅을 밟고 싶어 하던 미누씨의 염원. 우연히 한국에서 태어나 누군가가 그토록 원하던 꿈도 당연히 누리고 있는 저는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안녕, 미누>는 우리가 외면한, 하지만 들여다봐야 할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르던 우리를 미누를 통해 봅니다.

미누씨는 1992년 2월 22일 21살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네팔에서는 스무 살이 넘으면 외국으로 떠나는 청년들이 많은데, 미누씨는 88올림픽 덕에 한국을 택했습니다. 그가 왔을 때 한국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가 전무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미누씨는 대한민국 이주노동자 1세대입니다.

그렇게 식당 일을 전전하며 목포에서 상경한 주방 아주머니에게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도 배웁니다. 미누씨는 목포의 눈물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구성진 가락으로 부릅니다. 아주머니와 미누씨는 고향을 떠나온 묘한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돈 쓰지 마, 아프지 마, 아프면 나한테 이야기해'라는 말이 얼마나 따스했는지 모른다며 근 20년을 한국에서 살았습니다. 그에게 한국은 이십 대를 보낸 정체성 그 이상이었고, DNA 자체를 바꾼 고향이었습니다.

미누씨는 18년 동안 이주노동자 문제를 알리며 밴드 '스탑 크랙다운'을 결성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월급날>의 가사에는 받지 못한 월급의 애환이, 박노해 시인의 가사를 빌어 만든 노래 <손무덤>은 프레스에 잘려나간 손에 대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미누씨는 다문화가 뭔지도 모르는 시기에 한국 사회의 다문화를 위해 노력했고,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뛰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짐은 표적단속과 블랙리스트란 낙인이었죠. 출근길 집 앞에서 붙잡혔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못한 채 강제추방되었습니다.

네팔에 가서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가장 빛나는 20-30대를 한국에서 보냈는데, 갑자기 네팔에 와서 정착하려고 하니 깜깜했겠죠. 네팔의 문화는 낯설었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리운 친구들은 다 한국에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국과의 연을 이어갑니다. 한국에 가려는 네팔 청년들에게 한국어와 실질적인 조언과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부모가 돈 벌러 타지로 간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네팔은 일 년에 5-6천 명의 청년들이 3D 업종에 합법적으로 가며, 이주노동자의 자살률이 커지고 있는 나라기도 합니다.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미누씨는 다 잘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밴드 멤버들과 네팔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 이제 죽어도 좋아'를 외치며 한을 풀었다고 했습니다. 함께 살아야 함을 외치면 미누씨는 작년 DMZ 영화제 개막식 참여를 위해 짧게 입국했고, 고국으로 돌아가 한 달 만에 심장마비로 발견됩니다.

참 영화 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입니다. 그가 뿌려놓은 씨앗은 한국에서 자라나 꽃이 피고 열매 맺을 겁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차별 없이 하고 싶은 노래 마음껏 부르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있어 대한민국은 작은 발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무의미한 지난날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이주노동자의 아이콘입니다. 당신이 있어 대한민국의 인권은 한 발짝 진일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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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안녕, 미누'는 강제추방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오래동안 산 노동자이면서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해 운동 활동도 한 네팔인 "미누"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첫 인상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한데다가 한국어도 거의 토종 한국인 수준으로 유창한 미누 씨의 인생은 새로우면서도 신기하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는 파란만장한 삶이었음을 다큐는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에서 다문화 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문제나 심리적 거부감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이 영화는 미누의 삶과 말들을 통해 그 해법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하며, 우리가 사회가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준다. 인권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도록 해주는 권리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싼 맛에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린 우리 사회는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존중하면서 함께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미누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서러움이 담긴 목소리와 그들이 바라는 꿈을 노래했고, 불법체류자로서 강제추방 당한 뒤에도 한국과 네팔을 잇는 다리가 되기를 자처했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인 같기도 한 그는 양측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알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도록 하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영화를 보는 한국인이라면 우리 사회와 국내 외국인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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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놀랍고 반가운, 안녕 미누

“놀랍고 반가운, 안녕 미누”
feat. 「손무덤」 StopCrackDown, 박노해
 
“요즘에 주로 어떤 음악 들어요?”

“음… 어렵다, 작년엔 분명히 록 음악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편한 곡이요. 산책하듯 조용한…”

“… 작년엔 마음이 많이 시끄러웠나봐요.”


몇 해 전 그녀의 말에
지금도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뜨겁게 끓어오를 때
록 음악을 찾게 된다.

노래방이나 페스티발도 좋지만
한적한 시간에 중랑천을 가장 좋아한다.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러닝!
귀를 뚫고 들어오는 하드한 사운드로
몸을 튕기듯 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한껏 텐션을 끌어올려 이리저리 왔다 갔다
춤추고 샤우팅 하며 터질 듯 속도를 높인다.

이 순간에 순간은 데드 포인트 없는
세컨드 윈드와 러너스 하이 세계다.

지난주, 용광로 같은 록커! 미누를 새로 만났다.
‘니파라야’ 산 아래 있는 나라 네팔.
네팔 사람 미노드 목탄.

한국이름은 미누, 놀랍고 반가운 그를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를 통해 처음 만났다.

S#1. 놀랍고 반가운, 안녕 미누
미누는 1992년 스무 살에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왔다.
의정부 한식당과 가스 벨브 공장,
창신동 봉제 공장에 재단사를 거쳐
꼬박 18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로 한국어를 익혔고
친구들과 밴드도 만들어 쉬는 날이면 노래를 불렀다.
우연히 나간 시민 가요제에서 입상하고
방송사의 외국인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타며
세간의 주목도 받는다.

S#2. 뜨거운 가슴에 따듯한 로커
그러던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던 해.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다.

한국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며
3년 이상 4년 미만의 이주 노동자에게
체류 자격을 박탈, 출국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재입국 재취업의 심사 자격은 허가했지만
사실상 1세대 이주 노동자들을 쫓아내려
일하기 어렵게 만든 조치였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입국부터 사업장(직장) 변경, 비자 연장 등에
모든 권한을 고용주에게 주는
인권침해 조항이 더 큰 문제였다.

이주민들은 항의했고
몇몇은 신변을 비관해 안타깝게 목숨을 끊었다.

이를 목격한 미누는
이주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알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세상에 메신저가 되기로 한다.

다국적 밴드 ‘스탑 크랙다운’을 결성해
음악을 만들어 보컬로, 인권활동을 시작한다.
이주 노동자 시민 방송국도 세워
다각적으로 세상에 볼륨을 높인다.

하지만 2004년 8월, 법이 시행되고 얼마후
미누는 강제 추방당한다.
긴 시간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된다.

다큐멘터리 ‘안녕, 미누’는 네팔에 사는 미누를 찾아
여전히 뜨거운 그의 현재와 과거를 직접 들어본다.

다문화 사회로 확장돼가는 지금,
이 뜨거운 가슴에 따듯한 록커 미누를
당신도 꼭 만나봤으면 좋겠다. (5월 27일 개봉)

세계인의 날(5월 20일)을 앞두고
천국에서도 노래할 그를
감사와 애틋함을 담아, 추모한다.

S#. 에필로그
세계인권선언의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는 또 다른 차별로 돌아온다.
이주 노동자라고 해서 난민이라고
북한 이탈주민이라서 장애인이라서
페미니스트라서 성 소수자라서

무엇이고 무엇이라 구분 지은 것들이
편견과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나쁘게 행동하는 개인이 있을 뿐
전체를 혐오해서는 안 된다.

이웃 나라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포용의 연대를 말한다.

가족이란
함께 마음을 내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피를 나누지 않더라고,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마음을 열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이 따듯한 마음의 연대가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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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노래할까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진짜!"

함께 하는 세상, 우리 같이 노래할까요?

네팔에서 다시 뭉친 옛 밴드 멤버들과 박노해 시인의 시 <손 무덤>을 노래로 만든 이 곡을 듣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미누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마이크를 잡은 빨간 목장갑을 낀 손은 떨리지만 꿈만 같던 공연을 끝마치고는

"나 이제 죽어도 좋아"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은 선한 영혼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면 짓기 어려운 웃음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배웠다는 미누의 애창곡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뱃사공의 배를 탄 1인 승객으로 이 곡을 부르는 엔딩 신은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 사람 같던 미누, 고향집 뒷산 히말라야는 몰라도 한국의 뽕작을 감칠맛 나게 부를 줄 아는 미누,

스무 살에 한국에 와서 식당 일과 봉제공장 재단사를 거쳐 밴드 보컬까지 18년을 서울에서 생활한 미누,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자신의 온 청춘을 바쳐서 일하고 노래했지만 11년 전, 2009년에 강제 추방당한 미누!


네팔로 돌아가서 커피 트립의 사업가로 성장했으나 그는 여전히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미누를 위해 옛 밴드 멤버들은 네팔에서 함께 할 무대를 계획하게 되는데...

박노해 시인과 이주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손 무덤>

미누의 밴드 '스톱 크랙다운'의 히트곡 No. 1인 <월급날>

노랫말이 사람 마음을 후려친다. 가슴이 아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순간에도

그런 고통 속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월급날 가사에는 받지 못한 월급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어디 이주 노동자 뿐이랴?

힘없고 백 없어서 억울해도 말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많은 노동자들을 떠올리며 미누의 방에 걸려있던 빨간 목장갑 액자를 바라본다.


노동자의 상징이라며 공연할 때마다 끼고 노래 부르던 미누가 목장갑 앞에서 오열한 것처럼.

관객의 한 사람으로 미누의 마음을, 이주 노동자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들과 같은 입장을 내가 얼마큼 이해할 수 있을까? 목포의 눈물처럼,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내내 내 마음에도 눈물이 흘렀다.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준 지혜원 감독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지 감독은 <바나나 쏭의 기적>을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사람들 마음에 소소한 기쁨과 감동을 주는 다큐를 만드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다.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르고,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에서 일했던

미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굳건한 차별과 배제, 혐오의 벽에 작은 균열이 나길 원했다"는

그녀의 바람처럼 미누의 아픔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나 역시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위대한 로커" --- 음악 평론가 강헌,

"인간의 티 없는 미소가 무엇인지 보여준 진짜 친구" --- 작가 홍세화,

"자신의 꿈과 한국 사회에 미래를 일치시켜 놓은 사람" --- 철학자 고병권.



2009년 10월 09일 화성외국인 보호소에서 미누는 말했다.

“한국에서 말하는 희망사회 있잖아.

나는 한국에서 18년을 살았는데 그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한국에서 일하고, 노래하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여기(외국인 보호소)에 있잖아.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네팔에 가지 못하고 울지도 못했어.

나는... 어제 여기서 눈물을 흘렸어. 나는 한국에서 희망조차 꿈꾸지 못하는 사람인 건가?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 내가 한국에서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었는지.

18년이라는 시간이 헛된 것이었는지.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한국이 너무 슬프다”

2018년 제10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을 어제서야 관람했다.

그의 고국 네팔로 강제추방당했던 한국을

그 멀리서 그리워하며 한국 땅을 다시 밟고 싶어 하던 미누의 염원을 담은 영화다.



<안녕, 미누>는 그동안 우리가 외면했으나

관심 갖고 들여다봐야 할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누 씨는 1992년 2월 22일 21살에 한국에 첫걸음 한 이후 18년을 보냈다.

네팔은 스무 살이 되면 외국으로 떠나는 청년들이 많다.

그 시절, 미누 씨는 88올림픽의 여파로 한국을 택했고 그가 한국에 왔을 때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과 제도가 전무했던 시절이어서 미누 씨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1세대인 셈이다.

목포에서 상경한 주방 아주머니에게 배운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를 구성지게 부를 줄 아는 미누 씨는

'돈 쓰지 마, 아프지 마, 아프면 나한테 이야기해'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정말 따스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목포 아주머니의 그 따스함을 그대로 전달한다.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미소와 목소리로 18년간 한국생활에서의 노하우를 그들에게 전수해 준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닌 미누 씨는 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밴드 멤버와 네팔에서의 공연도 무사히 마치고, 2018년 제10회 DMZ 영화제 개막식에 참여하기 위해

아주 짧게 한국 땅을 밟은 후 고국으로 돌아가서 한 달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영화같이 살다 간 미누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오월,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가닿을 진짜 삶을 만나고 싶다면?

네팔리지만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 했던 <안녕, 미누>를 만나보라.



명동 CGV에 몇 달 만에 발걸음 했다.

중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긴 명동거리는 고즈넉하기 짝이 없었다.

홀로 늦은 밤 호젓한 거리를 걸으며, 미누가 내게 전하는 무수한 많은 메시지를 곱씹어 보았다.




손 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구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열 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 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 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더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 상가처럼

외국 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 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 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 간 미친놈처럼 헤매다가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 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 잘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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