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복서

My Punch-Drunk Boxer

6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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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한때 복싱 챔피언 유망주로 화려하게 주목 받던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

그러나 한 순간의 지울 수 없는 실수로 복싱협회에서 영구 제명이 되어버린 그는 ‘박관장’(김희원)의 배려로 체육관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시 복싱을 시작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설상가상 뇌세포가 손상되는 ‘펀치드렁크(punchdrunk)’ 진단까지 받게 된 ‘병구’.

어느 날 ‘병구’가 뿌린 전단지를 들고 체육관을 찾은 신입관원 ‘민지’(이혜리)는 복싱에 대한 ‘병구’의 순수한 열정을 발견하고 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민지’의 응원에 잊고 있었던 미완의 꿈이자 자신만의 스타일인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기로 결심한 ‘병구’는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장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

예고편


감독/출연

정혁기
정혁기
감독
엄태구
엄태구
혜리
혜리
김희원
김희원
최준영
최준영

리뷰

66.04%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34% 66%
3.5
'판소리복서' 간단 리뷰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소위 '흥행하는 영화'를 알아맞추는 능력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빨간 뿔테안경의 영화평론가도, 한 문장이 대여섯줄 나오는 평론가도, 유명 영화 커뮤니티 운영자도 영화의 흥행여부를 정확하게 점치진 못한다(경험상 대한극장 인근을 배회하던 영감님들의 적중률이 높았지만 다 옛날 얘기가 아닐까 싶다). 흥행은 다수의 관객이 결정짓는 일이다. 때문에 관객 개인의 선택이 흥행에 영향을 주는 것도 어렵다. 관객의 취향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판소리복서'의 흥행이 몹시 궁금하다. 분명 흥미롭고 세련된 영화긴 하지만 1년에 극장 3~4번 가는 관객들에게는 그만큼 낯선 영화일 수 있다. 귀엽고 애잔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상하고 새로운 지점이 많다. '판소리복서'는 익숙하지만 낯선 영화다.

2. 우선 이 영화는 제목부터 이상하다. '판소리'에 '복싱'을 더했다. 언뜻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처럼 언발란스한 것의 조화를 보여줄 수 있지만 사실 영화는 거기에 별 관심이 없다. 대뜸 '세계 최초 유일무이한 판소리복서가 있다'고 정해두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탓에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세계 최초 유일무이'라는 지점은 이 복서가 소수이며 인정받지 못한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판소리복서'라는 낯선 단어의 조합이 안겨주는 익숙한 인상이 있다. '배고프다'는 것이다. 두 단어는 모두 '오래된 것, 잊혀져 가는 것'을 말한다. 병구(엄태구)의 판소리복싱은 펀치드렁크로 기억을 잃어가는 그 자신의 간절함처럼 잊혀져 가는 존재를 붙잡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잊혀져 가는 존재와 옛것을 붙잡는 과정이다.

3. 오래된 기억을 붙잡는 일은 간절하면서도 괴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오래된 기억을 아름다운 것으로 남기려 하지만 거기에는 이체수수료처럼 부끄럽고 잘못한 일(책임)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는 애써 외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병구의 중요한 순간에도, 그가 떠올리는 것은 행복하고 좋았던 추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 실수한 일 등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좋았던 일과 그렇지 않은 일 모두를 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원작 단편영화 제목은 '뎀프시롤:참회록'이다. 정혁기 감독은 "참회보다는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참회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움'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회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편에서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그는 참회 이후를 이야기한 것이다.

4. 영화가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갈 지점은 꽤 있다. 먼저 '펀치드렁크'를 묘사하는 과정이다. 펀치드렁크는 복싱선수에게 나타나는 뇌세포손상 질환으로 불안증세나 기억상실, 혼수상태 등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이들은 일정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물이 다르게 인식되고 환각이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점프컷으로 시간을 건너뛰고 실재를 왜곡하는 등의 시도를 한다. 물론 이것은 여느 스릴러 영화들처럼 심각하고 무섭게 묘사되진 않는다. 때문에 관객들은 어디까지가 진짜고 환각인지 혼돈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게 스릴러 영화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다면 다행이지만 판소리에 맞춰 복싱하는 영화에서 전개가 복잡해진다면 가드 내리고 있다가 어퍼컷 맞은 것처럼 당황할 수 있다.

5. 다음으로 낯선 지점은 병구와 민지(이혜리)의 캐릭터다. 둘은 일단 만화적이다. 병구는 독한 면이 있는 유망주였다가 사고 이후 '멍청하지만 착한 친구'가 됐다. 민지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산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한없이 밝고 착하고 사랑스럽다. 흔히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들에 비하면 단순하고 극단적이다. 병구의 경우 단순한 것과 거리가 있지 않냐고 볼 수 있는데 그는 동전의 양면을 함께 보는 것 같은 복잡한 상태가 아니라 동전의 앞면이었다가 뒷면이 된 경우다. 이처럼 단순하고 극단적인 캐릭터들은 극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판소리복서'는 만화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붙어있다. 무엇보다 민지는 캐릭터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오래전 봤던 '뎀프시롤:참회록'을 떠올려보자면 꽤 심각하고 가라앉은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이야기에서 톤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민지의 힘'이다.

6. 무엇보다 가장 낯선 것은 '판소리복싱'이다. 취권같기도 하고 택견같기도 한 이것은 리듬으로 스텝을 밟아야 하는 복싱에 엇박자를 준다. 때문에 상대는 당황할 수 있지만 꽤 어려워보인다. 마치 박정태 현역시절의 '흔들타법'처럼 아무나 따라해서는 안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판소리복싱'을 보는 기분이 묘하다. 어떨 때는 취권처럼 멋있어 보이는데 중요한 순간에는 마치 링 위에 선 찰리 채플린처럼 묘사된다. 감동이 휘몰아 칠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관객에게 감동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아마 일반적인 흐름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딱 그 장면에서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영화를 냉정하게 바라볼 것이다. 이것이 누벨바그 시절처럼 '관객과 거리두기'를 시도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낯선 전개는 관객들이 외면할 것이라는 걸 각오해야 한다.

7. '결정적 장면에서는 낯선 환기'는 마지막 장면을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현실일 수 있고 병구의 꿈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후자에 무게를 두려고 한다. 아마 영화는 낯선 환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병구의 꿈일 수 있다. 영화는 그런 의도와 거리를 두기 위해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건 정말 꿈이야"라며 거리를 둔다. 그래야 영화가 더 애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영화 '달콤한 인생'의 나레이션과 같다. 잠에서 깨 울고 있는 제자에게 "슬픈 꿈을 꾸었느냐"고 묻는 스승. "행복한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라고 답하는 제자. 해피엔딩이 꿈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지만 영화는 스릴러의 구조를 끝까지 가져간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판소리복서'의 마지막 장면은 '디센트'의 마지막처럼 오싹한데 슬프기까지하다. 오히려 '디센트'의 마지막보다 더 영화적이다.

8. 결론: 리뷰를 쓰면서 영화를 다시 복기해보니 매력적인 점이 아주 많은 영화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것은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온전히 다가갈 수 있냐는 점이다. 나는 관객들이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구나"라며 유쾌하고 자비롭게 받아들이길 원한다. 그러나 이 바램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관객의 평가는 세상 어느 것보다 냉정하기 때문이다. '판소리복서'의 흥행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행복한 꿈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추신1) 영화의 흥행에 대해 염려하며 나는 함께 본 여자친구에게 "관객들에게 '염력'처럼 인식될 수 있다"며 "'염력'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염력'은 99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판소리복서'에 99만 관객이 들면 대성공이다. ...그래...99만명만 '판소리복서'를 봤으면 좋겠다.

추신2) '배우 이혜리'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들 중 민지는 가장 사랑스럽다. 어쩌면 이혜리에게 딱 맞는 옷일 수 있지만 배우의 역량을 펼치기에는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도 유쾌하게 봤으니 됐다.

추신3) 사실 단편에 출연했던 조현철 배우는 '복서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엄태구는 누가 봐도 복서의 얼굴(정확히는 착하고 싸움 잘하는 형)에 가깝다. 정말 잘 고른 캐스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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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봉 소식 접하고 일찌감치 기대작이었던 작품. 장점이 너무 와닿아서 아쉬운 단점을 덮어주고 싶다. 사람 냄새나고 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와, 우리와 같은 모지리들을 위한 영화다.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이자 어쩌면 꿈 같은 이야기.

신선한 조합이다. 얼마 전까지 ‘뎀프시롤’로 알고 있던 영화 제목이 ‘판소리 복서’로 바뀌면서 판소리와 복서?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대놓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건 확실하다. 탈춤같아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보이는 판소리 복싱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엄태구 배우는 ‘밀정’, ‘택시운전사’ 상업 영화에서 카리스마 있고 강렬한 역할들에서 벗어나 변신을 시도했다. 한물간 복서로 예상치 못한 웃음과 짠내를 선사한다. 이혜리 배우는 밝고 명랑한 민지 역할에 제격이지만 덕선이가 그대로 나타난 듯하다. 두 주연역할을 제치고 가장 와닿았던 캐릭터는 김희원 배우가 맡은 박관장이었다. 사연있는 병구를 품어주는 대인배이면서 교회 씬들이 인상 깊었다.

우려되는 점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 사이에 있는 극의 분위기. 만화적 요소들로 밝게 끌고 가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맘에 들었지만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라 흥행으로 이어지진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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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 남자의 인셉션

탁 트인 바다에서 판소리 장단에 맞춰 춤인지 복싱인지 모를 기이한 몸동작을 하는 남자. 후경엔 흰 한복을 갖춰 입은 여자가 장구를 치고 있다. 해가 떠오르고 있는 새벽녘 바다의 자연광은 영화 <버닝>의 헝거댄스 시퀀스를 연상케 하며 롱 쇼트로 잡은 남자의 쉐도우 복싱은 비장한 거 같으면서도 왠지 장난 같고 진지한 거 같으면서도 조금 우스워 보인다. 진지함과 우스움의 결합. 이 오프닝의 기묘한 분위기가 2시간짜리 <뎀프시롤>의 톤 앤 매너다.


# 기묘함에 힘을 싣는 촬영

<뎀프시롤>은 캐릭터 구성에 단점이 많은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판소리 복서 병구지만 민지와 관장, 병구와 같이 판소리 복싱을 만들어낸 한복소녀 역시 영화의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병구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전부 병구를 위한 부속품처럼 활용된다. 민지와 한복소녀는 병구를 각성시키기 위한 제물 혹은 성녀의 역할을 할 뿐이고 관장은 서사에 드라마틱함을 칠하기 위한 윤활유 역할, 배우 김희원의 감탄스러운 연기력에 한껏 기대 개그를 뽑아내는 자판기의 역할을 할 뿐이다. 특히 해리가 연기한 민지 캐릭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의 그림자처럼 보인다. 이러한 선명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뎀프시롤>은 판소리 복싱만큼 매력적인 영화다. 밸런스를 완벽하게 포기하고 변칙성에 힘을 실어 승부를 보는 프리스타일 복서의 영화답게 캐릭터의 밸런스를 포기하고 촬영과 편집에 힘을 실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다 오프닝 시퀀스는 당연하게도 사방이 탁 트인 열린 공간이다. 과거의 병구는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하는 복싱을 할 수 있었고 아마 그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기였을 것이다. 바다 시퀀스 바로 뒤에 붙은 컷은 병구가 사방이 꽉 막힌 좁은 방에서 일어나는 씬이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 사는 현재의 병구는 사랑하는 여자도, 복싱도 잃었다. 이처럼 인물의 상황과 심리에 조응한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대비는 러닝 타임 내내 변주되어 등장한다.

<뎀프시롤>은 공간의 대비 말고도 발상의 대비에 조응한 촬영도 선보인다. 독실한 신자인 관장이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 씬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이 씬들은 전부 같은 위치에 카메라를 놓고 진행된다. 인물들이 어떤 대화를 하건, 어떤 동선으로 등장하고 퇴장하건 상관없이 항상 카메라는 같은 위치에서 교회 씬을 찍는다. 그러나 단 한 씬, 다른 구도로 찍힌 교회 씬이 등장한다. 교환이 체육관을 떠나고 체육관 마저 재개발 될 위기에 처하자 관장은 시대가 변했다며 모든 것을 포기할 것처럼 한탄한다. 한탄을 듣고 교회를 나간 병구가 교회 창문을 열어젖히고 관장에게 질문한다. “근데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바로 이 씬에서 카메라는 집요하게 고집하던 구도를 버리고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구도로 교회 내부를 찍는다. 그리고 드디어 관장은 병구에게 복싱을 하자고 제안한다. 보수성의 상징인 교회 안에서 오래된 체육관에 집착하는 관장의 발상이 전환되는 순간을 촬영으로 영리하게 시각화한 것이다.


# 컷과 컷 사이의 휘몰이 장단

영화의 리듬감은 다양한 연출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리듬감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는 편집이다. 편집의 힘이 아닌 다른 힘으로 리듬감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는 투박해 보이기 쉽다. 예를 들면 <타짜2>에서 등장하는 카 체이스 씬은 차가 빙글빙글 돌고 배경음악으로 나미의 빙글빙글이 나온다. 음악과 화면의 기계적인 결합이 만든 리듬감은 촌스러워 보인다.

<뎀프시롤>에도 <타짜2>가 보여준 기계적 리듬감을 보여주는 씬들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 씬들은 잽에 해당하는 잔기술일 뿐이다. <뎀프시롤>은 휘몰이 장단처럼 살아있는 리듬감의 편집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초반, 체육관의 개구쟁이 어린이 콤비가 고장 난 티비를 마대로 쳐서 고치려 하자 병구가 ‘기계는 쳐서 고치는 게 아니야’ 라며 이들을 저지한다. 한참 소동을 피우는 이 세 인물들의 시퀀스는 병구가 실수로 마대를 부숴버리며 마무리된다. 이 컷 바로 뒤에 붙은 컷은 작동하지 않는 세탁기 앞에 선 병구다. 병구는 주먹으로 세탁기를 쳐서 세탁기를 작동시킨다. 그리곤 고물 세탁기의 시끄러운 소음에 맞춰 선보이는 판소리 복싱.

원투 이후 진도를 더 나가고 싶은 민지가 “코치님“ 하며 병구를 부른다. 동시에 교환이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려 병구는 안중에도 없는 관장은 전화 상대에게 ”임관장“ 하며 교환이의 시합을 잡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프레임은 ”코치님“을 부르는 민지의 클로즈업과 ”임관장“ 하며 애원하는 관장의 클로즈업을 빠르고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그 사이에 낀 병구의 무기력한 얼굴을 보여준다. 이 컷 바로 뒤에 붙는 컷은 병원에서 펀치 드렁크 진단을 받는 병구의 얼굴이다.

‘내용을 형식에 순응 시키기. 의미를 리듬에 복종 시키기.’ 프랑스 영화의 거장 로베르 브레송의 격언이다. <뎀프시롤>의 휘몰이 장단 편집술이라면 브레송 감독의 이 격언에 충분히 부합했다고 생각한다.


# 조작된 플래쉬백. 그리고 플래쉬 포워드

영화 후반 굉장히 이상한 씬이 등장한다. 병구가 교환과 링 위에 맞붙을 때, 영화는 앞에서 보여줬던 기이한 연출들을 전부 포기한 듯 진부한 스포츠 영화, 혹은 성장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의 순간에 병구가 지난 기억들을 회상하고, 쓰러질 듯 말 듯하는 병구의 육체는 슬로우 모션으로 포착되며 관장의 걱정어린 얼굴은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그런데 이때 느닷없이 이상한 씬이 등장한다. 병구의 지난 기억들을 회상하는 플래시백 씬에서 일어난 적이 없는 조작된 기억이 회상되는 것이다.

교환과의 시합 전. 병구와 민지가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체육관이었다. 그곳에서 민지는 장구를 치고 병구는 신명나게 판소리 복싱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민지가 아픈 병구에게 시합에 나가지 말라며 이렇게 다그친다. “왜 이렇게 사람이 이기적이에요?”. 이에 병구는 “죄송합니다. 근데 민지씨가 죽기 전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은거 다 하랬잖아요” 라고 답한다. 이게 관객이 본 병구의 원래 기억이다. 하지만 링 위에 서 있는 위기의 병구는 다른 기억을 꺼낸다. 그 기억에서 병구는 “왜 이렇게 사람이 이기적이에요?” 라는 민지의 질문에 “이번 시합이 아무 의미 없다는거 알아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링 위에서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지의 휘몰이 장단 연주와 병구의 판소리 복싱. 병구는 경험 한 적 없는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이것은 병구가 앓고 있는 펀치 드렁크와는 관련이 없는 증상이다. 뇌세포 손상증의 일종인 펀치 드렁크는 기억을 상실하는 증상은 보여도 기억을 전혀 다르게 왜곡하는 병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넉넉하게 생각해서 건망증이 심해 기억을 살짝 착각했다고 우겨도 앞으로 나올 씬들은 그런 너른 이해를 용납해주지 않는다. 병구의 조작된 플래시백이 나오기 전, 사실 2라운드에서도 병구는 판소리 복싱을 잠깐 선보인적이 있었다. 2시간 동안 함께 한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기묘한 이 복싱 기술은 시합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고, 시합 상대인 병구 마저 당황시켰다. 조작된 회상 이후 병구와 판소리 복싱은 동시에 각성하여 2라운드에서 선보인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격을 보여준다. 심지어 이번엔 진짜 장구로 휘몰이 장단을 연주하는 민지까지 있다. 하지만 경기장의 그 누구도 2라운드와 같은 동요를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경기장에 난입한 거나 마찬가지인 민지를 저지하는 사람 역시 없다. 과연 이것은 현실인가? 이것 역시 조작된 기억인가?

<뎀프시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라는 힐링의 시대에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한다. 사실 치료라기 보단 마취에 가깝다. ‘당신의 잘못이긴한데... 뭐 어쩌라고요. 잊을 순 없겠지만 그냥 다르게 기억해버리세요. 죽을 때 후회하기 싫으면.’ 영화가 제시한 치료법은 역설적으로 치료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의 과오를 넘기 위해선 정면에서 응시해야지 잊어버리고 회피하는 것만으로는 치료 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엔딩 씬, 링 위에서 뻗어버린 병구는 상처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조작된 플래시백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덮어버린 병구의 앞엔 올 리가 없는 조작된 플래시 포워드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결국 꿈속의 꿈이 아닌가? 병구는 미소를 지으며 스스로 환상 속에 갇히기를 택했으니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아니면 현실을 외면한 3류의 치졸한 정신승리인가? 판단은 관객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갈릴 것이다. 하지만 신명나게 스텝을 밟고 팔을 빙빙 돌리던 병구의 판소리 복싱은 우리의 어떤 방치된 감각을 납치한다. 병구의 토템은 여전히 돌고 있다. 그 토템을 쓰러트리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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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레트로 감성으로

바다마을의 허름한 복싱 체육관, 무일푼이지만 챔피언을 꿈꾸는 복서, 그 복서를 좋아하는 소녀와 강아지...
굉장히 전형적인 이미지와 이야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함을 동시에 가진 영화 [판소리 복서]입니다.​

펀치 드렁크에 망가진 복서 '병구'의 재기를 그린 이야기로
승자가 아닌 패자의 입장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소소하게 그리고 정겹게 그리고 있습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와는 다른 한적한 바닷가 마을과 고즈넉한 골목길의 예쁜 영상미는 덤​

항상 악역에 가까운 날카로움을 보여주던 배우 '엄태구'였지만 이번엔 동네 바보 형으로 전락한 복서 '병구'를 연기함으로써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유의 낮은 톤과 더불어 기어들어가는 발성이 더없이 어울리는 병구였었고

해맑은 매력의 '민지'역 '이혜리'는 [응팔] '덕선이'의 귀염귀염한 매력이 그대로 이어지는 딱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딱히 연기를 했다기보단 그냥 그 모습 같은?!​

적당한 코미디와 함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복서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아기자기하게 담고 있습니다만
새로움은 그저 잠깐의 '판소리 복싱'에 그칠 뿐이란 점이 아쉽습니다.

망가진 자신의 처지와 변화하는 세상 속 기약 없는 미래 등등 구성과 구도들이 전형적인 이야기더라도
적어도 대충 덮어 씌우는 해피엔딩만큼은 피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에요.

옛날에 보았던 소년 만화가 떠오르는 그 시절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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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사라짐의 사랑, 판소리 복서

“사라짐의 사랑”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질까.
그래서, 당신의 지난 사랑은….

‘판소리복서’의 병구는 펀치 드렁크 증세로 기억을 빠르게 잃어간다. 어쩐지 총명함도 함께 잃어 이젠 동네 바보형이 돼버렸다. 그럼 에도 지난 사랑의 불빛은 희미하게 남아돈다. 불현듯 현상되는 섬광 속에 과거 연인 지연과 판소리 복싱하는 자기가 있다.

현재 병구의 스텝은 과거와 현실, 환상이 뒤섞여 계속 꼬인다. 새로운 관원 민지가 살짝 잡아 줄 뿐, 막을 순 없다. 뒤늦게 병구의 상황을 알게 된 박 관장은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기회를 준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병구의 꿈인 선수 복귀를 도와 다시 미트를 낀다. 민지도 장구를 잡아 판소리 복싱에 장단을 맞춘다. 마침내 링 위에서 서게 된 병구. 얼쑤! 한바탕 판소리 복싱에 불꽃이 튄다.

영화에 대한 감상 이전에 지난 (나만의) 기억에 스텝을 밟아본다. 2014년 2월, 한예종 영상원의 제16회 졸업영화제. 당시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두 작품이 있었다. 바로 <뎀프시롤: 참회록>과 <12번째 보조 사제>다. 후자의 경우 다음 해 <검은 사제들>이란 제목으로 장편 개봉되었고, <템프시롤: 참회록>은 5년의 세월을 지나 리부트에 성공했다.

동년배 정혁기 감독의 불꽃은 5년을 돌아 ‘판소리복서’로 발화되었고, 영화 속 병구의 복싱도 새하얗게 타올랐다. 그래서일까. 민지와 병구가 주고받던 대사는 마치 감독 자신에게 했을 독백처럼 들린다.

“죽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은 거 해야 하잖아요.”

‘판소리복서’의 가장 큰 특징은 ‘갑분피식’이라는 홍보 카피처럼 상황에 맞지 않는 부조화를 즐긴다는 점이다. 병구의 비극, 민지와 로맨스, 교환의 신파를 섞어 -병구의 맹구스러움과 우습게 진지한 대사로 간헐적 코미디 장르를 창조한다.

일반적인 잽-잽-원투; 원투-쓰리-포의 콤비네이션이 아닌, 뎀프시롤 같은 변형 된 포즈의 영화다. 이 개성 탓에 올라오는 대중들의 평도 청과 홍코너로 극명히 나뉜다.

‘판소리복서’의 백미는 제목 그대로 판소리 복싱 장면이다. 신나는 판소리 장단에 힘있게 뻗는 병구의 주먹과 리드미컬한 몸놀림이 만나 새로운 에너지가 폭발한다. 신조어로 표현하면, -판소리 복싱 스웩에 개썰린다.

사나운 혼합과 변주 속 ‘판소리복서’에는 하나의 진심이 들어있다. 그것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사랑이고, 끝까지 안으려는 태도다. 이 바보스러움이 영화의 진심이다.

한물간 비주류의 문화-스포츠인 판소리와-복싱을 주소재로, 사라져가는 브라운관 TV, 필름 카메라와 사진, 컨츄리 팝과 재개발이란 오브제를 촘촘히 엮어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말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이것을 끌어안으려 하고, 변하는 시대는 이들을 떼어놓으려 한다. 나와 세상, 그것을 연결하는 도구에 간극이 깊다.

마지막, 영화는 병구의 환상 씬으로 바보스러운 사랑에 손을 슬쩍 들어준다. 정작 현실에 병구와 지연, 포먼 모두 죽은 시간으로 떠났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겐 바보스러운 사랑이 꼭,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비극으로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살아가고 사랑한다.
사라지는 것을 끌어안는 사랑이건

살아있는 것을 시작하는 사랑이건
당신의 사랑이 행복과 더 가까웠으면 좋겠다.

진짜 바보라서 행복한 게 아니라,
바보같이 행복한, 현명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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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찬가

<판소리 복서>는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찬가다. 그와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느껴진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지켜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겨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문득 내 삶에서 잊힌 것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붙잡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곱씹어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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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가 말했다.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잖아요."
병구의 이 한마디에, <판소리 복서>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대부분 담겨있는 듯 보인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뒤처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병구가 좋아하는 복싱도 그 뒤처짐에 속한 종목이었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필름 카메라나 재개발 지역, 거리에 빼곡한 장의사 간판 등 모두 하나같이 뒤처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해도, 그것을 사랑해온 혹은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할 사람들에게 그저 묵묵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시라 말하고 있는 영화였기에,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극의 분위기가 살짝 어두워지고 루즈해진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을 포용할 마음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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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화 <뎀프시롤: 참회록>이 작품의 토대가 되는 만큼, 오버랩되는 장면이 상당히 많다. 물론 배우도 바뀌고 극 중 인물의 역할이 바뀐 부분도 있지만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 이유는 서사의 뼈대가 그만큼 탄탄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대중영화'라 불리는 틀 안에 들어가는 건 다소 어렵겠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에 나는 이 영화의 현재를 응원하고 싶다. 개봉하고 조금 관람이 늦었는데, 이제라도 보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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