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97.02%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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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평범한 10대 ‘마일스 모랄레스’는 우연히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 능력을 가지게 된다. 혼란스러워하던 ‘마일스’는 악당과 싸우고 있는 ‘피터 파커’를 마주치게 되고 ‘피터 파커’는 ‘마일스’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서로를 만나면서 여러 개의 평행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마일스’와 ‘피터 파커’는 이후 스파이더 우먼 ‘그웬 스테이시’, ‘스파이더맨 누아르’, ‘스파이더햄’ 등 평행세계 속 공존하는 모든 스파이더맨들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의 유니버스에서 만나 팀을 결성한 스파이더맨들은 과연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예고편


감독/출연

피터 램지
피터 램지
감독
밥 퍼시케티
밥 퍼시케티
감독
로드니 로스맨
로드니 로스맨
감독
샤메익 무어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
헤일리 스테인펠드
니콜라스 케이지
니콜라스 케이지
제이크 존슨
제이크 존슨
리브 슈라이버
리브 슈라이버

리뷰

97.02%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3% 97%
4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01.
나는 마블의 캐릭터 중에서 ‘스파이더맨’이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라면 응당 받아야할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진짜 모든 전편이 재미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캐릭터 스파이더맨을 신이 가엾게 여겼을까? 그래서 이렇게 존잼인 생각의 발상을 다른 캐릭터가 아닌 스파이더맨에게 내려주신걸까? 소니에게도 큰 희망이 아닐수 없다.

02.
요즘 영화속 히어로들에겐 과업이 있다. 그들의 과업지시서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을 꼭 해야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도 그 과업을 충실히 이행한다. 여타의 히어로 들과 같이 자아에 대한 성찰을 하는 영화 플롯은 동일하지만,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해 끓임없이 생각하는 방식은 다르다. 주인공 마일스는 ‘그래피티 아트’를 한다. 타인의 생각이 만드는 내가 아닌 나를 표현하고, 다른 세계에 있는 또다른 ‘스파이더맨’들과 다른 나를 그려내는 방식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꽤 흥미로웠다. 이 ‘그래피티 아트’가 갖는 충동적이며, 장난스러운 그 기본의 의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2D와 3D 그림체가 서로 섞여 사용이 된다. 영화 속 픽셀이 쪼개지는 면서도, 그것이 뒤엉키는 과정또한 굉장히 자유로워서 보는 내내 신선하다는 느꼈다.

03.
이제는 고인이 된 ‘스탠리’는 영화속에서 말했다. 누군가를 도움이 되고자한다면 영웅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믿고 그냥 뛰어내려’라는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를 보면서,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너무 능력에 치중한 히어로 영화들을 보며 자극적이고 일회성 즐거움을 찾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큰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의 그 무거움을 이 영화를 통해서 새삼 생각하게 했다.

04.
이 영화를 특별관에서 보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 4
4.5
2018년 최고의 마블 영화!

개봉 전부터 평론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97%와 평균 평점 8.7점을 기록한(1월 3일 기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뉴욕 비평가 협회상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평론가들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첫 번째 '장편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만화책이 스크린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의 비주얼을 구현한 것, 그리고 실사 영화를 뛰어넘는 스토리와 메시지를 전달한 부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4년, 마블 코믹스는 '평행우주'를 활용한 '스파이더버스'(Spider-Verse)를 만들었고, 이 영화는 '스파이더버스' 세계관을 도입한 첫 장편 작품이 됐다. 서로 마주 보며 영원히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평행우주'에서 활동하던 '스파이더맨'들은, 여러 차원의 세계관을 열리게 하는 '차원이동기'를 발명한 빌런 '킹핀'에 의해 뉴욕으로 모이게 된다.

덕분에 관객들은 평소엔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힙합과 그라피티를 좋아하며 위장술을 사용하는 '마일스 모랄레스', 당당한 매력과 펑키한 비주얼로 '걸크러쉬'를 담당하는 '스파이더 그웬', 1930년대 흑백 세상에서 온 거칠며 냉소적인 히어로 '스파이더맨 누아르', 미래에서 온 '페니 파커'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방사능 거미 로봇, 슬랩스틱 코미디 만화에서나 볼 법한 귀여운 캐릭터 '스파이더햄'이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원조 스파이더맨'이라 할 수 있는 '피터 파커'가 과거 토비 맥과이어가 나왔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오마주하며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또한, '피터 파커'의 숙모인 '메이'도 '스파이더맨'들을 도와주는 인물로 등장해,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주며, 직접 야구 배트를 들고 빌런들을 상대할 정도로 용기 있는 인물로 설정됐다.

이렇게 원작 코믹스를 보지 않았다면, 낯설고 새로운 캐릭터나 세계관에 당황할 수 있겠지만, 익숙한 캐릭터들의 도움과 함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대중성을 완벽히 겸비한 작품이 됐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마블 코믹스를 완벽하게 오마주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위에,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마무리면서 원작의 클래식한 느낌으로 구현됐다. 극 중 캐릭터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강조하기 위해서, 선이나 음영 등 만화책에서 볼법한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것이다.

또한, 최대한 조명을 어둡게 하면서 거칠고도 부드러운 만화책 특유의 질감을 나타냈으며,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음향 효과("BOOM", "POW" 등)를 화면에 자막으로 배치했고, 만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화면을 여러 섹션으로 나누는 것으로 클래식함을 더했다. 여기에 카메라의 포커스를 조정해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깨지게 하니, 스크린에 무언가 잘못 인쇄된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고, 이를 통해 만화책의 프린트 방식을 재현하고자 한 섬세한 노력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왜 이렇게 힘든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게 된 걸까? 필 로드 프로듀서는 "애니메이션 기술력의 놀라운 성취를 통해 사람의 수고와 손길이 다시 보이게 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제작진의 의도처럼,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일루미네이션 등 3D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 제작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을 때, 이러한 2D와 3D의 결합은 관객에게 참신함을 안겨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단순히 새로운 세계관만 소개해준다면, 이 작품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메시지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명대사이자, '스파이더맨'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의 탈바이다.

'마일스'의 아버지 '제퍼슨 데이비스'는 경찰이기 때문에, 사회적 규율을 중시하며 아들이 바른 길로 커 나가길 원한다. 그러나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을 바꾼 '제퍼슨'은 '마일스'에게 다가가 "너는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에서 '선택'(Choice)이라는 말은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기존 시리즈의 주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로 작용된다.

'스파이더 그웬'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서,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는 인물로, '마일스'의 '평행우주'로 들어온 후, 자신과 같은 생각이나 고민을 지닌 동료들을 만나며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심지어 '마일스'의 삼촌 '애런 데이비스' 조차도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품에서 나오는 '선택'과 이로 인해 등장하는 '고민'은 단순히 '10대 사춘기'의 문제가 아닌, 사람이라면 모두 느끼는 갈등으로 소개된다.

또한,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만큼, 작품은 의도적으로 "누구든지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다"라는 대사를 넣으며 영웅은 실제 우리 주변에도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처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전달하고, '스파이더맨'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쿠키 영상뿐 아니라,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의 카메오 출연 분량과 추모 메시지까지 위트있게 펼쳤다.

2018/12/05 CGV 용산아이파크몰


  • 0
3.5
영웅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웅을 믿지 말고, 영웅이 되어라



이 영화는 마블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고 그에 대해선 코믹스 팬들이 더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 담긴 만화사적 의의와 재미에 관한 설명은 그들에게 넘겨둔다. 다만 이 영화가 지금 우리 시대에 도착하게 된 과정과 연유는 다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지금 우리에겐 불안한 사회가 있고, 그래서 영웅들이 속속들이 모여든다. <어벤저스>의 영웅들은 1편에서 뭉쳤고 2편에서 분열했으며 3편에서는 공공의 적을 만났다. 아마도 이런 흐름에 따르면, 곧 개봉할 4편은 공공의 적으로 파멸되었던 현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조작하려는 류의 이야기일 것이다. 비슷한 영웅들의 모임인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 시간 여행이라는 초월적 도구를 사용했듯이, 지금 이 시대에 벌어지는 큰 사건들이 처음부터 없었으면 하는 ‘현실조작’의 힘이 타노스에게 주어졌다. 그런 타노스는 모든 영웅이 한 번에 덤벼도 죽지 않을 불멸자로 묘사되며,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어떤 영웅이라도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주어졌다. 이 우주적 악당의 등장은 이전까지 나왔던 사소한 악당들을 모조리 ‘쩌리’로 만들어 버렸고,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마주했던 문제는 고작 ‘쩌리’에 불과했을 뿐 앞으로 더 큰 우주적 재앙이 남아있다.



십여 년에 걸친 마블 영화의 행진을 바라보며 무언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면 <어벤저스 3>의 도착지점이 우주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 우주적 존재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닥친 재앙이다. 그렇다면 이 재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 사악한 타노스를 무찌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영웅이라는 특출난 개인, 타자에게 문제 해결의 과오를 맡겨둔 채로 제 갈 길만을 갈 것인가. 우리 스스로가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영웅을 믿지 말고, 영웅이 되어라.



어떤 체계의 유령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른바 시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전지적 관찰자가 될 수는 없다.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던 게 멀리서는 보이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멀리까지 갈 수가 없다. 우리는 결국 지구라는 운명 공동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은 여러 시점으로 분할되어 많은 갈등을 빚고, 그것들을 모아보면 비로소 대략의 윤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 특별한 개인이자 평범한 사람이라는 문구는 히어로 영화 곳곳에서 강조되는데, 국회의원을 설명할 때도 우리는 같은 표현을 쓴다. 일반 시민을 대리해 의사권을 행사하는 이들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국민의 투표가 그들을 뽑았고 그것은 곧 국민의 의무를 ‘대행’하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이 대행은 말 그대로 대행일 뿐 권력이 아니라 그저 시민의 의무 중 하나일 뿐이다. 즉 우리는 동등하다.



물론 국회의원이 히어로 영화 속의 영웅들이 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거미줄도 없고 방패도 없으며 인공지능 슈트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신체적 능력이 아니라 어떠한 시선의 대리자로서는 영웅으로 기능할 수가 있다. 요컨대 진정한 영웅이란 헐크처럼 자아를 잃고 난동을 부리는 신체적 강자로서의 난봉꾼이 아니라, 모두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서 원활하게 이끌어 가는 리더쉽이라고 200년대 이후의 히어로 영화들은 말해왔다. 냉전이 끝나자 파괴적인 이성은 사라졌고, 감성처럼 따스한 ‘이성’이 우리 앞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그런 것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건 근본적으로 피터 파커라는 인물이 자본의 가난함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가난한 이들에게 정치란 먹고 사는 것에 도움이 안 되는 것에 불과하다. 공사장에서 일하며 하루를 사는 이들에게는 티브이를 보며 현실 정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가난과 저학력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공사판으로 흘러들어온 이들이 사회 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서 다시금 가난과 저학력에 빠지게 되는 굴레에 빠지고 만다. 이 굴레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이에 대해 <스파이더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사람들은 이 문구를 갑자기 주어진 힘을 바른 곳에 사용하라는 상투적인 동기부여 문구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의 역할을 떠올려 볼 때 정말로 무서운 교훈이다. 왜냐하면 피터 파커의 힘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로또와 같은 이 힘을 사용하는 것에 ‘왜’ 큰 책임이 필요한지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것을 피터 파커가 거주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체계 안으로 편입해 보았을 때, 큰 힘으로 다른 재화를 구매하는 것에는 큰 쾌락이 생길 뿐 책임이 필요하지는 않다. 돈을 쓰는 것에 책임이 필요하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애초에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돈을 써야만 사회가 돌아가기에 돈을 쓰는 것에 책임을 부여한다면 책임을 피하려 사회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까.



아마도 당신은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눈치챘을 것 같다. 돈이라는 게 힘으로 작용하는 사회에서 어느 날 갑자기 큰 힘을 부여받은 피터 파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그는 빈털터리이지만 신체적으로는 힘이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방식으로 살고 있지 않은 게 피터 파커이고, 다시 말해서 피터 파커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인물이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이기도 하다. 그는 거미줄을 뿜으면서 빌딩 숲 사이를 활공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인사하는 히어로이다.



이것은 마치 자본주의 사회가 가시화된 세계이고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세계, 반대된 체계의 왜곡된 세계,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그 세계를 살아가는 이가 마치 ‘유령처럼’ 도심 한복판을 활공하는 느낌을 준다. ‘친근한 이웃’이라는 스파이더맨의 아이덴티티는 어쩌면 그가 일상 속에 체화되어 있기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권력의 흐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의 반대편에 자리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은유하면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심어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다. 냉전이 아니라, 냉장고와 같은 시대다.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게 더 속이 편한 시대가 되었고, 과거의 침묵이 권력의 협박에 의해서였다면 현대의 침묵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등을 돌렸다는 점에서 더욱 슬프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요즘의 스파이더맨은 어떤 체계의 유령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일까.



어딜 가나 세상은 똑같다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를 보며 생각에 잠기게 된 지점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평행차원의 여러 영웅(스파이디)들이 이곳으로 넘어온다. 즉 이곳의 영웅으로만 적을 막기에는 모자라서 다른 차원의 영웅까지 끌어들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곳으로 소환된 계기와 소환된 후에 남겨진 그들의 차원이다. 스파이디 친구들은 금발 벽안의 타칭 ‘완벽한’ 스파이더맨의 죽음으로 이곳에 소환되었다. 말하자면 타의에 의해서 차원을 뛰어넘게 된 이들은 차원은 달라도 하나의 신념으로 생전 처음 보는 모랄레스(셔메이크 무어)를 도와준다. 그리고 모랄레스의 의무는 앞서 죽었던 선대 스파이더맨(크리스 파커)가 맡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의 신념이 정상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이 임무를 맡아야 하며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는 어떠한 ‘지점’은 이제 곧 다가올 마블 영화의 한 시대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그들의 기조 문구가 타의에 의해 주어진 ‘큰 힘’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모랄레스가 갑작스럽게 떠맡은 이 임무를 큰 힘에 대응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피터 파커는 죽어가면서 모랄레스에게 네가 아니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면서 꼭 수행해달라고 약속하자고 말한다. 이 시점에서 모랄레스는 스파이더맨의 의무를 계승했고 그래서 사실상 그가 스파이더맨이 된 시점은 거미에 물린 때가 아니라 피터 파커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이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스파이디들이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것도 이 하나의 기조에 동의하기 때문이며, 그런 맥락에서 스파이더맨의 의무란 그들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거나 그들에게만 인지되는 특수한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요컨대 스파이더맨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어떠한 불합리들을 ‘감지’해내는 영웅이라면, 위협을 감지하는 스파이더센스란 우리가 마주할 불합리를 예고하고 수면 아래에서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일 테다. 이건 곧 지식인(知識人)의 책무이기도 하다. 다른 표현으로는 지식인이 아니라 그런 지식을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 영웅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개념이 무엇이고 그들의 책무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영화 밖에서 따로 공부하도록 하고 우리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지식인들의 행태를 묘사해보아야 한다. 우리 세계에만 모자라서 다른 세계의 것들까지 끌어오는 이 영화의 발칙함은 지구를 넘어 우주와 아스가르드로 퍼져 나가는 마블의 영화보다 앞선 것이다. 지구가 아니라 우주로 눈을 돌려 갈등과 구원을 찾던 시대는 갔고,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들로부터 구원을 얻고 싶어한다. 이 세계에서 죽은 사람이 다른 세계에는 살아있을 것이라는 시공간 차원의 존재론은 차치하고, 이 세계에서 죽은 정의가 다른 세계에는 살아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이 영화에서 목격한다. 피터 B. 파커(제이크 존슨)와 그웬 스테이시(헤일리 스타인펠드)와 느와르 갱스터(니콜라스 케이지)와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와 피터 포커(존 멀레이니)의 세계에도 위협은 있었고 그런 위협을 당하던 중에 이곳으로 납치되어 온 그들의 모습은 어딜가나 세상은 똑같다는 회의감을 주는 것에 일조한다. 더욱 슬픈 것은 그들이 그들의 차원에 두고 온 온갖 범죄가 있을 것임에도 이쪽 차원의 의무를 다할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이다.



오직 이쪽 차원의 의무에 맞추어 설계된 이 영화의 방법론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애초에 이런 종류의 평행세계를 다룬 작품들 모두를 비판하게 될 것이다. 다른 세계로 다른 세상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결코 헛되지가 않다. 이념이 매몰이 아니라 희망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기도 한 것처럼, 그 종교적인 기반의 구축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도움을 줄만 하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의 영웅들이 이곳 차원에서는 몸이 산산이 부서지면서도 그다지 개의치 않아 하고 또한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영웅에게 집이 있던 걸까. 서부개척시대와 그에 파생된 모든 여행자가 불현듯 찾아와 불현듯 떠나버린다. 영화는 그들이 왜 그리 강하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관객의 차원에서 상상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영웅들에게 집이 주어지는 경우는 둘 중의 하나밖에 없다. 첫 번째, 가족이 있거나. 두 번째, 그곳이 모나지 않은 무덤이거나.



내 이웃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들의 집은 어디인가. 이때 집이라는 단어는 정말로 그들이 거주하는 거주지가 아니라 마음을 둘 안식처가 어디인가에 대한 용례로 사용된다. 피터 파커의 DNA가 차원이동기기에 스며들어 다른 차원의 스파이디들을 불러오는 장면에서는 어쩌면 이 시대가 원하는 영웅상이라는 게 만약에 만약을 거듭하면서 모든 경우의 수를 소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러분. 여기 하나의 영웅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영웅은 이런 형태로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전의 과학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자꾸만 묻고 결국에는 철학으로 담론을 넘겨주었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원자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 것인가. 이 지구는 둥근가 네모난가. 사실 이에 대해서 가장 명쾌한 해답은 지금 당신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믿으라는 지금-이 순간의 인상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른바 클로드 모네의 인상적인 풍경들. 그러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는 그러한 인상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여러 영웅들을 불러오는 게 마블의 영화라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스파이더센스로 차원과 시간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의 모습이다. 마치 <셰이프 오브 워터>가 지구 상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던 원시 우림에 숨겨진 태초의 인류를 데우스 브랑퀴아라는 모습으로 꺼내왔듯이, 그러한 타자는 우리가 단지 인식하고 있지 뿐이어서 다른 차원으로 인식되는 시공간으로부터 호명된다는 점을 떠오르게 한다. 타자. 얼굴을 가리고 행동하면서 경찰과 위치적인 대립을 겪는 자경단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타자다. 우리와 다른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도 그는 타자이며 방사능 거미에 물려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잃게 되는 비극적 스토리 또한 ‘타자’로 여기고만 싶다. 그가 정말로 타자라면 우리는 그 혹은 그녀를 외면했을 것이며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은 그들이 사실은 타자가 아니라는 점을 잘 말해준다. 요컨대 이 여섯 명의 스파이디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가 사는 차원에서 유령의 형체를 벗고 종교적 믿음의 형태로 체현한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어떤 미술적 사조로 분류할 수 있다면 아마도 큐비즘에 가까울 것이다. 당신은 시종일관 만화적 리얼리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가 어째서 팝아트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소니 Sony가 이 영화의 ‘팝’함을 위해 만든 기술이 특허까지 났다는 기사가 났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인가. 현실 세계의 이데올로기의 영역 밖에서 비가시화 된 그러니까 마치 자외선의 형태로 우리 곁을 떠도는 이 유령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유령들은 단지 우리 세계의 추상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여러 가정도 존재할 수 있었고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표시이다. 그래서 영웅 하나의 희생이 다음 세대의 영웅인 모랄레스를 불러내었고, 이 작은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려면 무려 다섯 번의 만약을 거듭해야 했던 것이다.



다섯 방향의 시선으로 현실을 새롭게 보자. 피카소가 그러했듯이 두 갈래의 현장을 한군데에 모아 애달프게 손수건을 물어뜯는 여인의 얼굴이 보이고, 이것을 단지 찌그러진 여인의 얼굴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영화 속에서 차원 이동의 부작용을 겪는 스파이디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녀의 얼굴은 여러 시선의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그녀의 표정을 짓게 한 이 시대의 여러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마치 지하철역의 플랫폼처럼, 큐비즘이라는 이름의 입체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스크린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어떠한 현상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3D 시네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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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블 스튜디오와 소니 픽처스의 판권 문제가 해결되면서 스파이더맨은 '마블 유니버스'에 합류하게 된다. 새 스파이더맨의 등장으로 탄력을 받게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왔다. 마블 시리즈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스크린에서 개봉한다. 이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선택된 스파이더맨은 특유의 매력을 통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오직' 스파이더맨만의 색깔로 채워 넣는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꽤나 실험적인 도전을 택했다 할 수 있다. 익숙한 주인공인 피터 파커 대신 흑인 꼬마 마일스 모랄레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물론 6명의 다른 스파이더맨들을 등장시킨다. 여기에 라이트 노벨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익숙하지만 아직 영화에서는 독특한 소재로 받아들여지는 평행 우주(패럴렐 월드)를 가져왔다. 이 어색하고 복잡할 수 있는 세계관을 정리한 힘은 '스파이더맨'이 가지는 가치다.

스파이더맨은 마블의 다른 영웅들과 다른 매력을 소유하고 있다.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는 평범하고 내성적인 학생이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다른 영웅들처럼 투철한 책임감이나 영웅이 갖는 포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파이더맨에게는 인간적인 고뇌가 있다. 그에게는 갑부 아이언맨처럼 자신감이 있지도, 군인 캡틴 아메리카처럼 투철한 정신이 있지도 않다. 또 신 토르처럼 강인함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에게는 인간적인 고민이 있고 성장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주변의 고통에 마음을 쓰는 인간적인 영웅이 스파이더맨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이런 스파이더맨의 매력을 마일스 모랄레스에게 주입시킨다. 덕분에 관객들은 익숙하지 않은 이 새로운 주인공에게서 원작의 '피터 파커'의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에 한 가지 포인트를 준 건 마일스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이가 다른 세계에서 온 피터 파커라는 점에 있다.

마일스가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얻고 신기해하는 스파이더맨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른 세계에서 온 피터 B. 파커는 오랜 시간 히어로로 생활하며 느끼는 염증을 보여준다. 스파이더맨의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심리적으로 많은 동요를 일으킨다. 남을 구해줘 봐야 자신에게 이로울 거 하나 없고 본인의 삶은 점점 망가져 가는 생활에 지친 피터 B. 파커는 마일스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를 보여준다.

마일스는 피터 B. 파커를 통해 영웅이 지녀야 될 자세를, 피터 B. 파커는 마일스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렸던 초심을 되찾는다. 중심이 되는 두 명의 스파이더맨을 통해 관객들이 사랑하는 스파이더맨의 가치를 새롭게 이식하며 흥미를 더한다. 여기에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효과를 절묘하게 섞은 편집과 장면 구성도 있다. 이 구성은 여러 인물들이 엮이며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열쇠가 되어준다.

화면 분할을 유용하게 사용해 관객이 흥미를 느끼기는 힘들지만 설명을 해야 되는 이야기를 빠르게 끝내며 이야기에 속도감을 더한다. 여기에 영화처럼 규모에 구애 받지 않고 스케일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마일스가 피터 B. 파커와 도심을 질주하는 장면이나 킹핀의 연구소에 몰래 잠입하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특히 6명의 스파이더맨이 모두 등장하는 마지막 액션 장면의 경우 캐릭터들이 서로의 동선을 신경 쓰는 영화와 달리 자유롭게 자신들의 능력을 펼쳐 보이며 매력을 발산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어색함과 한계를 느낄 지점들을 표현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되었다는 점, 기존 히어로가 아닌 새로운 인물을 내세운 스핀오프도 충분히 흥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형식과 소재에 있어 신선함을 갖추되 원작이 지향하는 가치를 품어낸 이 작품은 11월, 세상을 떠난 원작자 스탠 리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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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만화(책)과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독특하고 화려한 조합

다사다난한 스파이더맨이다. 삼촌의 죽음만 너무 많이 보여준 스파이더맨이기에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에서는 탄생을 아예 빼기도 했다. 즉, 이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의 탄생에는 큰 관심이 없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웅이 되는 과정은 기존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독특하게 자신과 비슷한 존재이자, 자신의 고충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6명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마일스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스파이더 그웬, 스파이더맨 누아르, 피터 B. 파커, 페니 파커, 스파이더햄이 등장하면서 평행 세계의 스파이더맨을 등장시킨다. 이렇게 등장하는 스파이더맨들의 활약은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반면, 각 캐릭터의 특성을 확실히 잡지 못하는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빌런 역시 많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능력이나 활약은 상당히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만화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여주며, 다른 스파이더맨도 등장시키지만 평범한 존재 마일스를 스파이더맨으로 만들면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스파이더맨이 되고 나서 바로 활약을 하는 것이 아닌 영화의 반 이상을 그가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사용하는 법을 피터 파커에게 알려달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그는 너무나 평범한 존재인데,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존재다. 그렇기에 망나니 삼촌 에런을 따르는 것이다. 사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도 영화적인 틀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럼에도 차원 붕괴라는 설정을 넣어, 독특한 연출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속되는 노이즈 현상이 다소 눈이 아프게 할 수 있지만 그 노이즈가 영화의 묘미를 확실히 주고 있는 느낌이 상하다. 특히 가장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만화 원작인 것을 강조하듯, 만화책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니, 기존 스파이더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사에만 의존하던 <스파이더맨>이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났다. 기존의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이번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일반인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힘쓰는 것은 물론, 만화적인 요소를 아주 흥미롭게 사용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스토리 라인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과 함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고한 느낌이 있기에 더욱 특별해진 스파이더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엔딩크리딧이 다 올라가면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2018.12.08 코엑스 메가박스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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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를 앞서 본 모든 연령대를 만족시킬 작품.

MCU 이전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스파이더맨에 입문한 올드팬들에겐 향수와 추억을, MC를 벗어나 새로운 걸 찾는 이들에겐 신선한 자극을 선사하다.

수많은 히어로들이 대부분 실사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현실세계에서 구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아쉬운 맛도 있었다. ‘뉴 유니버스’는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발랄한 스파이디(MCU ‘홈커밍’)과 진지한 스파이디(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재치와 진중함 중간에 있던 스파이디(‘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평행세계라는 소재 하에 집합해 보는 즐거움을 줬다.

그리고 이전 시리즈에서 본듯한 설정을 오마주로 차용해 신선함과 친근함까지 전달했다. 12세 이용가에 걸맞는 입담과 개그까지 잘 어우러져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데드풀’ 같은 영화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중간중간 마블코믹 원작처럼 혼용으로 연출한 것도 인상 깊었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여전히 빌런의 존재감은 약했다. 역대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중 가장 많은 빌런이 출연했으나, 소모품에 끝났다. 마일스&피터 B.&그웬을 제외한 다른 스파이디 3명도 예고편에 비해 활약상이 미비했던 것도 걸리는 부분.

-2018년 12월 5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언론/배급 시사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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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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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p of Faith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nyone can wear the mask.
You can wear the mask.
If you didn't know that before, I hope you do now.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터 파커의 스파이더맨이 아닌, 새로운 스파이더맨과 다른 차원에서 스파이더 우먼 등으로 활동하던 존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다른 이들과 달리 방사능 거미에 물린 지 얼마 안 된 마일스는 전기 충격과 투명 인간이 되는 능력까지 갖고 있으나, 그 어떤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언제 스파이더맨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냐고 피터 B. 파커에게 묻자, 그는 대답한다. 그저 믿고 뛰어내리라고.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스파이더맨의 삶처럼, 마일스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방황을 겪는다. 그러나 자신의 내재된 가능성을 믿고 스스로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쓴 뒤, 마침내 뛰어내린다. 이때 화면의 위 아래가 뒤집혀, 마일스가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비상하는 새처럼 보였다. 이후 자신감을 가진 마일스가 거미줄을 타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는 순간 짜릿함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일스의 또 하나의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나는 서사 자체도 좋았지만, 이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 것은 애니메이션 효과라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등장하는 로고에 다양한 변형이 생기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자극했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낼만한 장면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마일스가 처음으로 뛰어내리는 장면과, 마지막에 거미줄을 타고 도시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이렇게 눈이 즐거운 동시에, 배경 음악까지도 완벽해서 보는 내내 귀도 호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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