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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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바다 한가운데 좁은 구명보트..
호랑이와 함께 남게 된 소년 ‘파이’의 놀라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들은 정부의 지원이 끊기자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한다.
동물들을 싣고 캐나다로 떠나는 배에 탑승한 가족들.
하지만 상상치 못한 폭풍우에 화물선은 침몰하고 가까스로 구명선에 탄 파이만 목숨을 건지게 된다.
구명 보트에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그리고 바나나 뭉치를 타고 구명보트로 뛰어든 오랑우탄이 함께 탑승해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놀라게 만든 진짜 주인공은
보트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시간이 갈수록 배고픔에 허덕이는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리처드 파커와 파이만이 배에 남게 된다.
파이는 배에서 발견한 생존 지침서를 바탕으로
점차 ‘리처드 파커’와 함께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태평양 한가운데서..
집채 만한 고래와 빛을 내는 해파리, 하늘을 나는 물고기, 그리고 미어캣이 사는 신비의 섬 등
그 누구도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사건들을 겪게 되는데…!

감독/출연

이안
이안
감독
수라즈 샤르마
수라즈 샤르마
이르판 칸
이르판 칸
라프 스팰
라프 스팰
아딜 후세인
아딜 후세인
타부
타부
제라르 드빠르디유
제라르 드빠르디유

리뷰

99.69%의 좋아요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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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안의 교훈>

모두가 비현실적이라며 ‘다그치는’ 이야기. 캐나다의 프랑스 마을에 사는 인도인 화자(파이)는 관객의 대리인으로서 인도의 프랑스 마을을 방문했던 캐나다인(레이프 스폴)을 끌어들인다. 기이한 인연. 관계가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의심’은 있을 수 없다. 모험담은 국제적이다. 일본회사의 유람선은 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에서 침몰했고, 파이는 멕시코의 해안가에서 구조됐다. 세 대륙의 관객이 동질감을 느낀다. 파이는 욕심이 많다. 우리를 확실히 포섭하려 든다. 키워드는 종교다. 기회주의자적인 그는 모든 교도에게 호소한다. 자신이 이슬람교를 믿는 천주 힌두교도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신의 뜻”이라 말하는 힌두교의 ‘카르마’는 불교의 ‘업’(業)도 설명한다. 노아의 방주 모티브는 천주교도는 물론 개신교도와 유대교도에게 어필한다.

“종교는 방이 많은 집이야.” 그는 기어코 모든 종교인을 투숙객으로 잡아두려 한다. “의심은 믿음을 굳건하게 한다”며 ‘시험’에 든 모든 교도들을 안심시킨다. 스스로 시련에 몸을 내던져버림으로써 자신이 당신들의 편임을 주장한다. 일상-시련-귀환의 구조를 갖춘 신화적인 영웅담은 무교(無敎)의 관객에게도 매혹적이다. 덕분에 이야기는 진실처럼 들린다. 아니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곤 실록을 거부하게 만든다. “어떤 이야기를 택할래요?”라는 질문은 선택의 자유를 준다기보다 차라리 정답을 강요한다. 환상적인 이미지로 포장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사실 이야기의 힘에 기대는 영화다. 컴퓨터 기술로 만들어진 화면발 좋은 미장센은 언제나 후순위다. 간사할지라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영화의 본질이다. 3D 영화시장이 주춤해진 지금 영화사들은 리안 감독의 이 교훈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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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5년전 개봉하여 환상적인 이야기와 깊이 있는 통찰로 관객들과 뭇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안 감독의 역작이다. 이안 감독은 대만인이지만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 등으로 동서양 모두에서 인정받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감독으로서, 이안 감독  특유의 감성은 다른 영화들에서는 보기 힘든 유니크함이 확연히 느껴진다. 본 작은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여 몹시 아쉬웠던 작품인데 이렇듯 재개봉을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유의바랍니다.

이야기의 플룻은 단촐하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항해하는 중 배가 침몰하여 바다에서 표류하다 멕시코에 도착한 한 인도 소년의 이야기를 작가가 방문하여 듣는 액자식 구성. 어떻게 보면 흔한 표류기로 끝날 수도 있는 영화에 배 안에 호랑이를 한 마리 동행시킴으로써 이안 감독은 마법을 부려놓았다.

먼저 배경을 태평양으로 설정한 것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다. 그 어떤 기상천외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믿지 못할, 그러나 충분히 있을 법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들 속에서 헤엄치게 된다. 유우니 소금 사막이 연상되는 거울 같은 바다의 표면, 별천지에 와 있는 듯한 해파리들과 빛나는 거대한 고래는 놀랍다 못해 엄숙하기까지하다. 날치 떼에 휩싸이는 장면이나 압도적인 폭풍 속에 삼켜지는 씬에선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전율하게 하는 것은 이런 일들이 영화 속 판타지가 아닌, 왠지 바로 옆에 있는 기적처럼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태평양은 우주, 즉 크리슈나의 입속을 표상한다. 생명을 가지고 통째로 떠다니는 섬의 존재는 살아숨쉬는 대자연 그 자체이다. 주인공의 이름 파이는 여환무단(如環無端). 삶의 순환, 우리가 곧 우주(자연)이고 자연이 곧 우리임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라이프 오브 파이란 제목은 결국 '삶의 순리'로 해석된다. 바다 깊은 곳에서 물고기가 동물이 되고, 이것이 다시 어머니가 되고, 또한 배가 가라앉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태초부터 이어진 순환의 고리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그리고 이 장면이 자기자신의 비춰진 얼굴에 투영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소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이던 파이가 물고기를 먹고 울면서 신에게 감사를 외치는 행위 역시 이 또한 자연의 섭리임을 깨닫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동행하는 리처드 파커(호랑이)와의 갈등과 애착은 우리와 타인의 관계를 나타낸다. 남과 때론 다투고, 때론 사랑하며 우린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된다. 어쩌면 초끈이론처럼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배와 뗏목이 이어진 것처럼. 혼자였다면 죽었겠지만 둘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안도가 그들에게 살아나갈 힘과 의미를 부여해 준 것이다. 처음엔 서로 경계하며 다투던 리처드와 파이는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의 거리는 결국 제로(0)에 수렴하게 된다. 파이가 리처드 파커의 머리를 무릎위에 올려놓는 행위는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 그리고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이 둘은 같은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자연이며 아(我)와 타(他)는 하나이니까.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점은 작가의 이런 동양철학적인 시점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관객 모두를 무리없이 만족 시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말미에 작가의 이야기에 호감이 없는 이들을 위한 다른 버전의 스토리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는 두가지 버전의 스토리가 있고 파커는 둘 모두에서 고통받는다. 리처드 파커가 곧 파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여 해석의 갈래길을 제시해 줌과 동시에 동전의 양면을 모두 조명해준다. 좀 더 현실적인 스토리를 원하는 관객들은 이안이 준 동전을 뒤집어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잔인한 인간군상의 단면을 확인할 수도 있다.

파이가 진실을 이야기해도 직원들이 원하는것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배의 침몰 원인과 그의 생존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들도 마찬가지이다. 블로그에 쓸만한 현실적인 영화 해설을 말이다. 하지만 삶이란 비현실적이고 신비한 기적같은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현상에 치우쳐 세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구적 인식(acquire)에 함몰되어 동양적 인식(perceive)사고관을 잃어버린 것이다. 서양근대철학의 패러다임에 쇼크를 준 것이 바로 동양철학의 인식관이었다. 조사관들은 오랑우탄이 바나나를 타고 왔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어머니가 바나나를 타고 오는 스토리는 위화감 없이 받아들인다.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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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라이프 오브 파이>, 섬을 떠나야만 그는 살 수 있다

1. 인도 출신의 이민자로 캐나다에서 지내던 파이에게 어느 날 신과 기적을 찾는 작가가 방문한다. 신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지 묻는 작가에게 파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은 동물들을 싣고 이민을 떠나지만 도중 거센 폭풍우를 만난다. 배가 침몰한 채 혼자 살아남은 파이는 구명보트에 올라 타 얼룩말과 하이에나, 그리고 오랑우탄과 함께 표류한다. 그러나 이내 배고픔에 허덕이는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유일하게 남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파이는 보트에 남는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개봉 당시 화려한 시각효과로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으로, 특히 파이가 바다에서 표류할 때 에피소드를 담은 아름다운 영상미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실제로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과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시각효과에만 집중해서는 이 작품이 왜 그토록 큰 사랑을 받았는지를 온전히 느낄 수 없다. 파이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종교는 무슨 의미이고, 그들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하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 때, 이 작품의 화려한 영상미는 진정으로 그 빛을 발한다.

2. 모든 영화의 초반부는 중요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물밑작업을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초반부에 파이가 서로 다른 종교들을 경험하는 모습을 제시하며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중요한 것은 이때 파이가 신을 믿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신념을 배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힌두교의 신들을 통해 여러 신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웠고, 신부님을 만나 예수를 배울 때, 그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다며 비슈누 신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처럼 한 종교의 가르침으로 다른 종교를 배우고, 한 종교의 시각에서 다른 종교를 경험하는 파이에게 종교들은 단순한 신의 대한 믿음이 아니다. 그에게 종교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이고, 세상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즉 그는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진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로 파이는 많은 종교들을 접하는 와중에도 논리와 이성에 근거해서 세상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름을 파이로 개명하는 에피소드나 바다에서 표류할 때 과학적 지식에 판단해 생존하는 대목이 그 예시로, 이는 파이가 종교들을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3.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영화는 파이의 입을 통해 캐나다인 작가에게 전해지는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통해 종교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으로 마무리된다. 파이의 회상 속에서 일본 보험회사 직원들은 리처드 파커와 함께 표류하며 신비한 경험을 마친 그의 이야기를 믿지 못했고, 다른 이야기를 요구했다. 그러자 파이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표류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는 과정을 거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끔찍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이때 파이의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알려준다. 캐나다인 작가는 두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처음 들려준 이야기가 더 좋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신화 혹은 종교로 만들어지는 첫 번째 이야기가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해줄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이야기에 담긴 인간의 잔인한 현실과 인간이 꿈꾸는 이상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 즉 영화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종교적 관점에서 사실을 신화적 구조로 구성한 것이 분명하다. 인간인 파이, 자연을 대표하는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 그리고 초자연적 일들로 가득하며 내면의 공포와 불안을 느끼면서도 이를 극복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화의 구조다. 자신의 생존에 신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언급도, 또 듣는 사람들이 믿기 힘들지만 입증하기도 힘들다는 점 역시 그의 첫 번째 이야기가 종교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증거다.

4. 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부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종교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며, 종교에도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함께 지적한다. 신의 품 안에서, 종교의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마냥 행복하고 언제나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이의 첫 번째 이야기가 더 좋은 이야기라고 말한 작가도, 막상 첫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종교는 완전할 수 없다. 설사 종교의 틀 안에서 만나는 세상이 설사 진실이더라도, 이를 남들에게 설득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이는 진실을 설명하기 위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종교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신의 형상을 한 섬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다. 생명을 죽이는 섬. 처음에 파이는 그 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러나 파이는 이내 죽은 사람의 유골을 발견하고 그 섬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를 깨닫는다. 아무리 아름답고 행복해 보일지라도, 현실에 발 붙이고 있는 한 현실을 외면한 채 종교와 신만 쫓으며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파이는 죽을지도 모르고 어디에 갈지도 알 수 없으나 섬에서의 휴식과 위안을 뒤로한 채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한편 파이의 이야기는, 그의 깨달음은 이미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던 오디세우스는 지중해를 떠돈다. 그러다 마침내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안식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복을 뒤로하고 떠난다. 아내와 아들과 다스려야 하는 국가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여신이 주는 위안만을 쫓을 경우 자가 자신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의 섬에 그저 머무르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이라는 바다를 항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바다와 섬을 아름답게 묘사해 낸 이 작품의 시각효과와 영상미는 진정으로 그 빛을 발한다.

5. 사실 처음 접할 때 영화의 전반부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꼭 필요한 이야기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판데믹 위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라도 종교를 찾고, 종교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면 <라이프 오브 파이>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파이는 세 종교를 한 번에 믿을 수 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종교는 그 방식 중 하나이자, 효과적인 도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로 다른 내용의 두 이야기도 만들 수 있었다. 신이 어떻게 힘이 되는지, 또 동시에 신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섬을 떠난다. 그것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파이를 인간(human being)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과학과 이성의 헤게모니 속 여전히 종교가 살아 숨 쉬고 필요한 이유에 대한 해설이나 다름없는 아름다운 영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아름다운 영상으로 탄생한 심오한 매력의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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