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맨
4.5

보이지 않는 공포와의 사투, 지금 시국과 닮았다

인간은 시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이야기할 때 흔히 눈으로 본 것만 믿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과연 보이는 게 전부일까? 영화는 보이지 않을 때의 막막함을 다뤘다. 잘 안다고 확신할 때 그놈은 반드시, 당신을 해친다.

영화 <인비저블맨>은 투명 인간을 소재로 보이지 않는 공포를 그려냈다. 공포영화의 문법을 새롭게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와 오락적인 연출은 짜릿한 반전으로 해갈된다. 감독 겸 배우 리 워넬은 제임스 완과 공동 집필한 <쏘우>의 각본과 아담 역할까지 맡아 다재다능함을 선보인 바 있다. 바로 전작 <업그레이드>를 통해 호러 명가 블룸 하우스의 저력을 입증했으며 이번에도 각본, 감독, 기획까지 맡았다. <업그레이드>는 인공지능의 섬뜩한 반격이란 소재와 신선한 전개로 호평 받았다.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애드리안(올리버 잭슨 코헨)에게서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남자지만 사실 소시오패스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감시, 집착, 광기, 족쇄는 애드리안과 어울리는 단어다. 그와 살면서 받은 지속적인 학대와 억압은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언니 남자친구 제임스(알디스 호지)집으로 도망친지 며칠이 흘렀지만 불안함을 감출 수 없어 쩔쩔맨다.

외모부터 시작해 입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까지 애드리안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탓에 숨통이 막히는 것은 물론 섬뜩함까지 경험한 까닭이다. 평소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애드리안이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다. 자기 것에 대한 집착과 공포로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 주 후 그의 동생 톰이 나타나 형의 자살 소식과 함께 고액의 유산을 조건 없이 상속받게 된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도 전한다. 갑자기 이야기가 술술 풀리는 느낌이다. 과연 세실리아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까?

거짓말처럼 애드리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오히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숨겨온 세실리아와 애드리안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늘 CCTV처럼 지켜보는 섬뜩함, 잃어버린 물건이 되돌아오는 기이함, 나도 모르게 의심만 늘어나고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덮쳐온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상처 주고 믿을 수 없는 일들만 생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드리안의 짓 같지만 누구도 세실리아를 믿어주지 않아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세실리아만 알 수 있는 애드리안의 표식이 하나둘씩 늘어나며 점점 상황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익숙한 설정을 배치해 일상의 낯선 공포를 선사한다. 먼저 집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에게 노출될 최적의 공간이란 소리다. 특히 혼자 있는 집안은 그야말로 제대로 걸려든 덫이다. 흔히 영화가 투명인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이 영화는 투명 인간과 사투를 벌이는 여성을 통해 짜릿한 통쾌함을 맛보게 한다. 돈도 배경도 권력도 없는 나약한 여성의 어떤 대결을 펼쳐질지 영리한 화법으로 대답한다. 주변인과의 관계, 피해자의 공포, 과학 발전의 어두운 이면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우리의 눈을 속여 버리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카메라로 담는데 성공했다. 애드리안은 광학전문가로 투명 인간이 되는 법은 아는 과학자다.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먼지 하나까지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집착,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최상위 포식자다. 이런 포식자에게 평범한 세실리아는 구미 당기는 먹잇감일 뿐 놓아주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세실리아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있다고 말할수록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점차 옥죄는 상황들은 정신병원 감금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관객은 정말 세실리아가 미친 것인지 보이지 않는 실체가 실재하는 것인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투명 인간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한 연극적인 설정이 몰입감을 높인다. 진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고립된 처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좌절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수많은 CCTV에 매일 노출되고 있는 현대인에 관한 은유는 서늘한 결말과 함께 당신의 뒤통수를 가격할 것이다.

<인비저블맨>은 투명 인간이란 소재 탓에 <할로우 맨>이 떠오르고, 연인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은 <미저리>가 연상된다. 무엇인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지만 명확히 보이지 않아 답답한 느낌을 영화 속에 눌러 담았다. 모두들 한 번쯤은 경험해 본 공포일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증명해야만 하는 답답함. 지금 대한민국에 퍼져있는 바이러스와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명확히 존재하며 극도의 불안함으로 타인을 믿을 수 없어 혼란스러운 아노미 현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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