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4.5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MCU의 어벤져스 시리즈의 4번째 작품으로 전작인 '인피니티 워'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MCU의 히어로들이 한 곳에 모이는 어벤져스 시리즈는 언제나 하나의 빅 이벤트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11년간 MCU가 쌓아온 인피니티 사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었기에, 굉장한 기대와 호기심을 받으며 나왔다. 그리고 11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대작답게, 이 영화는 MCU라는 유래없는 프랜차이즈가 써내려간 책 한 권을 덮는 동시에, 앞으로 써갈 다음 책을 여는 영화가 됐다.

우선, 스포없이 말할 수 있는 장점 한 두개를 먼저 나열해보겠다. 첫째는 시각효과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마찬가지로, 타노스의 모션 캡쳐는 정말 엄청나며, 다양한 풍경들을 개성있게 그리다가 액션은 화려하게 장식하는 CG도 최고 수준이다. 둘째로는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은 MCU가 약했던 적이 거의 없었기도 했지만, 이 영화에서도 주연들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스포일러에 민감한 만큼 이 이후부터는 아예 강하게 스포일러를 하도록 하겠다.


-------- 이 이후는 스포일러입니다--------


'인피니티 워'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그 영화는 타노스를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액션 어드벤쳐 영화다. 마치 '인디애나 존스'처럼 우주 이곳저곳을 다니며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떠나는 타노스의 이야기는 그가 빌런이라는 점과 그의 상대가 어벤져스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에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게 됐지만, 어찌됐든 타노스라는 중심적 인물이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 복잡한 이야기가 잘 정돈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엔드게임'은 '인워'와 같은 이야기다. 다만 주인공이 타노스에서 어벤져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번엔 생존한 어벤져스가 타노스의 핑거스냅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 떠나간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영화의 차이점들을 보면 우리는 작가진 크리스토러 마커스와 스티븐 맥필리, 그리고 루소 형제 감독이 인피니티 사가의 최종 영웅 서사를 어떻게 짰는지 엿볼 수 있다.

우선,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인공을 바꿈으로써 주인공들이 서로 대조된다. 어벤져스가 타노스와 같은 여정을 밟으며 하는 선택의 차이에서 우리는 영웅과 빌런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된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소울 스톤의 절벽이다. 타노스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딸을 희생시켜야한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슬퍼하긴 했으나, 망설임은 없었다. 반면에 호크아이와 블랙 위도우는 서로가 자신을 희생시키기 위해 싸울 정도였다. 타노스와 어벤져스는 둘 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돼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수단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쓰냐에서 확실한 차이점을 드러내며 어벤져스의 고귀한 영웅심과 타노스의 극단적인 사상이 갈린다.

타노스의 이야기는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하나 하나 타파해가는 모험담에 가까웠다면, 어벤져스의 이야기는 극중 대사처럼 하이스트 영화에 가깝다. 하이스트 영화의 요소들을 가지고 온 점은 굉장히 영리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 영화로 어벤져스 시리즈의 데뷔를 한 앤트맨의 솔로 영화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하이스트 영화다. 그런 그가 계획의 시초를 제공했기에 영화가 하이스트적 요소를 가지게 된 점도 어찌보면 적절하다. 둘째, '인워'에서 타노스는 굉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싸우는 서사였다면, '엔드게임'에서 어벤져스는 이미 수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풍비박산이 난 상태다. 그들은 언더독인 셈이다. 이런 언더독들이 팀을 꾸려 거대한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계획을 짜야하는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면, 여러 범죄자가 함께 모여 은행 같은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곳을 침투해야하는 이야기인 하이스트의 공식은 꽤나 잘 맞는다.

마지막으로, 타노스와 달리 어벤져스는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면서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야한다. 이 시간이라는 요소에서 아마 영화에 대한 가장 큰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등장시킬 때,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들을 유머로 언급하며 본인들의 시간여행 규칙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의 시간여행 규칙들을 적용시키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시간여행 영화에서는 과거의 자신과 만나면 특이점이 온다거나, 과거를 바뀌면 (예를 들어 존 코너를 죽이면) 미래가 바뀐다 (인간 반란군이 진압된다) 라는 식으로 여러 제약들을 제시한다. 하지만 '엔드게임'은 이런 규칙들을 전부 대놓고 부정하며, 시간여행 후에도 기존 인과가 그대로 적용되는 상당히 편리한 판을 짠다. 이 영화의 각본가들과 감독들은 애초에 시간여행이 SF/판타지의 영역임을 이용하여 말그대로 자기 마음대로 이를 해석한 것이다. 시간과 인과의 개념을 분리시키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를 부실하고 엉터리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고민 끝에 이 정도는, 블랙 위도우 말마따나 "너구리한테 이메일 받는 미친" 슈퍼히어로 스토리에서 펼칠 수 있는 창작적 자유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하나의 요소는 시간과 공간의 잦은 변화다. 보통 공간이 너무 자주 변하면, 세계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한 순간 이 행성에 있다가 1분 뒤에 저 행성에 있다가 또 다른 행성으로 옮기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관객은 자신들이 딱히 외계행성에 다녀왔다기 보단 외계행성의 슬라이드쇼를 봤다는 생각 밖에 안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인워'에서도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적 배경은 꽤나 자주 변했는데, 이는 타노스라는 하나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관객이 몰입해야할 점을 타노스라는 빌런과 그의 목적과 성격에 영화는 집중하며 그가 인피니티 스톤을 찾기 위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목적으로 공간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체가 널부러진 아스가르드 우주선, 불타는 노웨어, 가모라를 죽인 절벽 등). 반면에 '엔드게임'은 '어벤져스', '닥터 스트레인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토르: 다크 월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인피니티 워' 등 이전 영화들이 배경으로 삼았던 시간과 장소들을 재방문한다. 이에는 몇가지 이점이 있다. 우선 팬서비스 지수가 최정점이라는 점이다. 11년의 여정을 복습하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지켜봐온 팬들에겐 감동일 수 밖에 없다. 예전 캐릭터들의 반가운 재회와 더 이상 볼 수 없는 공간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이제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아이콘 같은 명장면이 된 '어벤져스'의 로우 앵글 원형 트래킹 숏을 다시 큰 화면으로 보며, 지난 11년 간의 이야기가 모두 다시 되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둘째로는 이 시간과 공간이 (대체로는) 관객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 왜 왔는지를 설명해줄 필요가 적다는 점이다. 즉, 스토리텔링 면에서 굉장히 시간을 절약한다. 이는 어찌보면 호불호 포인트일 수 있다. MCU의 디테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거나 게으른 스토리텔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11년 동안 21편의 장편 영화들을 쌓아올린 MCU라서 할 수 있는 대담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그 선택을 충분히 존중한다. 요컨대, 시간과 공간을 자주 변화시켜도 이들이 괸객에게는 모두 익숙할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가며 세계관에 몰입하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제작진은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벤져스'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대여섯이나 되는 주연급 캐릭터들을 한 편의 장편에 충분히 담을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 영화는 충분히 그 걱정을 날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는 세계관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듯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캐릭터의 양적 인플레이션이 심한 MCU에서 '시빌 워'와 '인피니티 워'를 통해 루소 형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은 듯했다. 바로 선택과 집중, 즉 소수의 메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풀어나가되, 나머지 히어로들을 비중있는 사이드 캐릭터로 적절히 사용하며 팬 서비스와 오락성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와 버키, 그리고 아이언맨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나갔고,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를 사실상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우다시피 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네뷸라, 토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네뷸라를 제외하면 원년 어벤져스 멤버들이다.

우선 네뷸라의 비중은 상당히 의외였다. 네뷸라와 가모라와 타노스의 복잡한 가족 관계는 히어로와 빌런이 사적으로 교감을 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포인트이긴 하다. '인피니티 워'에서는 이를 타노스의 관점에서 전개했다면, '엔드게임'에서는 이를 네뷸라의 시선으로 다시 본다. 평생의 학대와 개조 때문에 타노스에 대한 두려움과 충성심을 분간하지 못하는 과거의 네뷸라와 '가오갤' 시리즈를 통해 조금씩 발전한 가모라와의 자매 관계로 바뀐 현재의 네뷸라를 통해 영화는 한때 악의 편에 있었으나 이제는 (아마 높은 확률로) 가디온즈 오브 갤럭시의 일원이 된 네뷸라라는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말그대로 본인을 죽이면서까지 가모라를 지킬 정도로 끈끈한 가족애로 무장한 바뀐 네뷸라를 통해 타노스와 어벤져스, 선과 악의 차이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수많은 마블 영화에 주연과 조연으로 활약한 토니 스타크는 MCU에서 가장 잘 묘사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로 시작한 그는 아이언맨이 됐다. 그의 솔로 무비들은 아이언맨으로 살아가는 방법, 슈트의 무게를 배워가는 여정이었으며, 그 이후부터의 그는 아이언맨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됐다. 이런 토니 스타크에게는 굉장히 오랫동안 큰 흠이 있는데, 그는 세상을 구하기 노력하다가 오히려 세상을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즉, 의도와 결과가 잘 맞지 않은 히어로 삶을 산 것이다. 힘의 원천인 아크 리엑터 때문에 역설적으로 죽을 뻔하기도 하고, 그가 만든 인공지능으로 인해 도시 하나가 통째로 날라갈 뻔한 것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영향으로 어벤져스가 해체되기까지 하며, 무엇보다 인피니티 워에서는 끝내 패배를 하며 세상의 절반을 구하지 못한다. 토니 스타크의 행적은 사실 실패로 가득 찬 길이다. 그런 그는 이번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최고 초능력인 두뇌를 쥐어짜며 타임머신을 만들고, 덕분에 계획을 성공시키며, 어벤져스를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따듯한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캐릭터에 대한 매듭을 모두 지은 상황에서 토니 스타크의 마지막 대사와 희생은 완벽한 영웅의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더 이상 아이언맨을 안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된지 꽤 된 상태에서, 새로운 배우로 아이언맨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MCU 제국 건국의 일등공신인 배우와 캐릭터에게 슬프지만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게 작별을 고한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선언하며 시작된 이야기를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재확인하며 끝낸 토니 스타크의 대사는 실로 명대사다.

실패의 이야기는 토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토르' 삼부작은 실패한 왕자에서 실패한 아들에서 실패한 군주로 이어지는 토르의 일대기라고 봐도 된다. '인피니티 워'가 끝난 시점에서는 그는 가족을 전부 잃었고, 고향 세계도 사라지고 백성도 절반만 남은 왕이다. 패배감과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하며 술에 찌든 생활을 하는 토르의 첫 등장은 웃기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크리스 헴스워스의 연기 속에서 굉장한 상처가 느껴졌기 때문에 토르라는 캐릭터를 짓누른 책임감이 남긴 흉터를 처음으로 제대로 상상하게 된 것 같다. '인피니티 워'에서 웃는 표정으로 비극적인 개인사를 전하지만 그 목소리와 눈빛에서는 깊은 슬픔과 분노가 느껴진 연기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스가르드에서 죽은 어머니와 재회하며 정말 오랜만에 본인의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품 속에서 그동안의 슬픔과 고통이 사르르 풀리는 장면이었으며, 그 순간만큼은 천둥의 신 토르가 아닌 어머니를 보고 싶어하는 아들 토르 오딘손이었다. 그는 실패를 거듭한 리더였지만, 그로 인해 그는 성장을 했으며, 그의 백성은 구원을 받았고, 끝에는 본인도 지위에 속박되지 않고 본인만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며 토르의 인피니티 사가는 끝났다.

캡틴 아메리카는 슈퍼솔져로 변하고 2차대전에 참전한 이후로 계속 군인의 삶을 살아온 자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념으로 전쟁을 치룬 그는 얼음에서 깨어난 뒤 70년 후의 세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더 이상 안 통한다는 것을 '윈터 솔져'에서 깨닫고, '시빌 워'에서는 무엇을 위해 싸울지를 스스로가 직접 정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완전한 히어로가 되며, 어벤져스의 진정한 리더가 되며, 그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스티브 로저스의 삶은 없어졌다. 그는 언제나 전쟁을 치루는 삶을 살았지만, 역설적으로 전쟁이 없는 삶에서는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페기 카터를 다시 한번 만나며, 그는 다시 스티브 로저스의 삶을 꿈꾼다.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캡틴 아메리카에게 전투 이후의 삶이 생긴 것이다. 크리스 에반스도 MCU를 떠날 것을 시사한지 좀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캡틴 아메리카와의 이별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조용하고 평화로운 퇴역으로 스티브 로저스와 이별한 것 또한 평생을 싸우기만 한 전사를 보내기에는 더없는 엔딩이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의 극적 내러티브가 이토록 매끈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약간의 미묘한 점은 블랙 위도우라고 생각한다. 블랙 위도우 또한 이 영화에서 자신을 희생시키는 영웅이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는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행적이 잘 묘사되지 않은 캐릭터다. 말로는 맨날 옛날엔 끔찍한 삶을 살다가 쉴드에 와서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대사로만 처리하니 관객으로서 캐릭터의 여정을 체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절벽 아래로 투신시킨 것은 영웅적이긴 하나,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임팩트가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마블이 먼저 만들었어야 할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는 '캡틴 마블'이 아니라 '블랙 위도우'가 아녔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캡틴 마블은 이 영화에서 가장 실망적인 캐릭터였다. 이 영화 직전에 오리진 영화가 나왔고, 어벤져스와는 거의 연결점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이 영화에 그녀를 투입시키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영화에서 캡틴 마블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어벤져스가 필요할 때 뜬금없이 나타나다 능력 과시만 하는 소모품만 돼버렸다. '인피니티 워'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던 토르의 와칸다 참전 장면과 '엔드게임'에서 캡틴 마블이 클라이막스 전투 참전하는 장면을 비교해보면 그 한계가 명확하다. '인워'에서는 토르를 참전시킬 때,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아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토르의 눈이 푸른색으로 빛나며 처음 보는 도끼를 휘두르며 타노스를 어딨냐고 울부짖을 때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캡틴 마블은 우주를 지킨다라는 다소 포괄적인 목적을 가지며, 영화 내내 안 보이다가 거의 2시간 만에 등장하니, 반갑기보단 뜬금없을 수 밖에 없다. 이는 마블의 프랜차이즈 기획이 영화와 잘 조화가 안 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액션도 여러모로 흥미롭다. 사실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액션이 적다. 처음부터 헐크와 타노스의 주먹다짐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액션 세트피스로 화려하게 장식한 '인피니티 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하이스트적인 요소가 들어가며 전투보단 잠입을 중요시하며, 액션 대신 캐릭터 드라마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덕분에 '윈터솔져'의 엘리베이터 씬을 반전시켜 영화에서 가장 웃긴 순간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액션을 영화는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며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호크아이의 도쿄 갱단 대학살에서는 그의 분노와 슬픔을 느낄 수 있고, 캡틴 아메리카는 선과 악 밖에 모르는 과거의 자신을 이겨내야했으며, 호크아이와 블랙 위도우의 짧은 싸움에서 역설적으로 서로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막스는 다시 장엄한 스케일로 돌아온다. 타노스의 군단에 맞서 홀로 선 피투성이 캡틴 뒤에 나타나는 포털들을 통해 돌아온 나머지 어벤져스와 와칸다와 마법사와 아스가르드 군단의 광경 자체만으로도 소름이지만, 드디어 내뱉은 "Avengers Assemble"이라는 대사는 11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포문을 열기에 완벽했다. 와칸다의 드넓은 평지와는 사뭇 다른 배경인 폐허가 된 어벤져스 본부는 종말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세상의 운명을 위한 전투라는 점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한다. 먼지와 불꽃이 휘날리는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이 시퀀스에서도 영화는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11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그 후의 모험을 기약하는 커튼콜이다. 전 출연진이 인사를 하는 커튼콜답게, 영화는 전장을 긴 테이크로 훑으며 각 캐릭터들의 개성 넘치는 싸움들을 보여주며 팬 서비스도 보장해주며, 화려한 스펙터클로 블록버스터의 클라이막스를 제대로 터뜨린다. 또한, 어벤져스의 원년 멤버가 차세대 멤버들에게 정말 말 그대로 바통 터치를 하는 액션 시퀀스도 있다. 액션 씬의 순간순간 모두 단순히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도 계속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점은 정말 훌륭했다. 액션 뿐만 아니라 알란 실베스트리의 음악도 '인피니티 워'와는 사뭇 다르다. 어벤져스 테마를 꾸준히 틀어주며 위풍당당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인피니티 워'와는 달리, '엔드게임'은 좀 더 장엄하고 숭고하면서도 캐릭터들의 감정에 훨씬 집중한 스코어를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단점 하나만 더 지적하자면, 일부 유머 씬들이 너무 어색하게 길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헐크와 앤트맨의 셀카 논쟁 등이 있다. 이런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좀 아쉽긴 했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아주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고 페이스도 좋았긴 했으나, 이런 순간들이 확실히 흐름을 좀 깨긴 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전무후무한 영화다. 이론상으로 이와 비슷한 영화를 만들려면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한데다가, 이런 굉장한 프랜차이즈의 한 막을 닫는 경우도 처음인지라 MCU도 아마 이 감흥을 차기작들에서 재연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 영화는 11년 동안 21편의 장편 영화를 쌓아온 상업 영화의 역대급 실험의 장대한 결말이다. 이 영화의 주제와 감동에 비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마 '로건' 정도 밖에 없을 것이나, 그 스케일과 기획력을 고려하면, 이 영화는 말도 안되는 성과임은 틀림없다. MCU는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할리우드 대형 기획사의 굉장한 실험이자 업적이며, 이에 방점을 찍은 '엔드게임'도 그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이 방점이 찍히는 순간을 극장에서 볼 수 있던 점은 영화 팬으로서 영광이었으며, 이후에 따라올 그 다음 문장은 어떻게 시작할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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