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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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Ralph Breaks The Internet)> 속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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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디즈니

과거의 디즈니는 스테레오타입의 적극적 생산주체였다. 이는 변호할 수는 있어도 전면부정하기는 힘든 문장이다. 과거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해부해보면 지극히 백인우호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외모지상주의적인 시각이 녹아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지금은 '백설공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전형이 된 디즈니의 1937년작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에서 선역인 백설공주는 아름다운 데 반해, 악역인 마녀는 그렇지 않다. <라이온 킹(The Lion King)>에서 선역인 사자들은 백인의 억양을 사용하는 데 반해, 악역인 하이에나들은 흑인과 히스패닉의 억양을 사용한다. 혹자는 이에 대해 과민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픽사 제외)이 주 관객층으로 겨냥하는, 비판적 수용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동들은 무의식적으로 '예쁜 사람은 착하다', '소수인종은 나쁘다'라는 명제와 그 대우를 참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기능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반기를 든 드림웍스의 등장은 시기가 문제였을 뿐 예견된 일이었다. 동화 속 예쁜 공주들이 왕자와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서사에서 벗어나 아웃사이더를 전면에 내세워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누구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식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등장 직후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안티테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슈렉(Shrek)> 시리즈와 <쿵푸팬더(Kung Fu Panda)> 시리즈는 그 전까지 '용납'되지 않았던 못생기고 뚱뚱한 주인공들을 메인스트림으로 끌고 와 디즈니 주도의 애니메이션 물리법칙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 두 시리즈가 입증한 건 애니메이션이 판타지 충족을 위해 봉사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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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을 전파하는 기수가 된 디즈니

그런데 지금의 디즈니는 과거와 다르다. 이제 디즈니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그 어느 곳보다 정치적 올바름을 열정적으로 다룬다. 그 정도가 심해서 영화의 완성도에 큰 결함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조금은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볼까 한다. 바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Star Wars: The Last Jedi)>다. 개봉이 1년 이상 지나 영화에 대한 '재판'이 완료된 시점에서 결론 짓자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는 되었을지언정 올드 팬들에게 올바른 영화는 되지 못했다. 여성 캐릭터를 프로타고니스트로 만들고 흑인 캐릭터와 아시아계 캐릭터에게 하나의 시퀀스를 작위적으로 부여할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리지널 시리즈의 설정을 만족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신경을 쓰지 않은 영화였다.

그렇다면 디즈니는 왜 이렇게 정치적 올바름을 열심히, 종종 지나치게 전파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시도할 수 있다.

첫 번째, 초거대기업이 된 디즈니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설명이다. ABC, ESPN 등 비(非)영화 자회사를 제외하고, 디즈니는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을 산하에 두고 있는 초거대 스튜디오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6대 스튜디오 중 하나인 20세기 폭스의 모회사 21세기 폭스를 인수했다('할리우드 6대 스튜디오'는 디즈니, 유니버설, 워너 브라더스, 소니, 20세기 폭스, 파라마운트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디즈니, 유니버설, 워너 브라더스 3강 체제에 들어섬에 따라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는데, 20세기 폭스가 디즈니 수하에 들어가면서 용어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었다.). 즉, 너무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스튜디오가 되었으니 짊어진 사회적 책임도 그에 맞게 증대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가 돈이 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영화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시장논리에 의한 설명이다. <블랙 팬서(Black Panther)>가 북미 박스오피스 7억 달러의 흥행을 달성한 것을 생각할 때, 언뜻 보면 이 설명은 첫 번째 설명보다 합리적인 설명 같다. 그러나 일련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의문부호를 완전히 지우기 힘들다. 디즈니 공주들의 관련 상품 매출 순위에서 여전히 엘사(<겨울왕국(Frozen)>), 신데렐라(<신데렐라(Cinderella)>)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메리다(<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와 유색인종 공주들은 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은 손으로 가리려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물론 관련 상품 매출은 캐릭터 인지도 등 더 많은 독립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또,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로즈 티코 피규어는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지당하게도, 정치적 올바름에 신경 쓰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디즈니의 매출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데 반해(약 15%) 테마파크와 상품 판매 비중은 40%를 넘는다는 점, 디즈니의 안정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중국이 백인 선호 경향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설명은 디즈니의 급진적 태도에 대한 설명력이 부족하다(참고: 서울경제 기사(https://www.sedaily.com/NewsView/1S5VF7F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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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속 디즈니의 자기비판

이 장황한 이야기의 종착점은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의 공주 대기실 장면이다.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에서 바넬로피는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의 스톰트루퍼들을 피해 어느 문을 열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간 장소는 디즈니 공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주 대기실이었고, 공주들은 갑작스럽게 쳐들어온 이 낯선 침입자를 위협한다. 백설공주는 독사과를 들고, 라푼젤은 프라이팬으로 경계하며, 신데렐라는 유리천장 혹은 코르셋의 메타포로 보이는 유리구두를 깨 바넬로피에게 들이댄다. 일단 공주들이 각자의 무기로 스스로를 호신하는 이 장면부터 여성은 구원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그리고는 바넬로피가 자신도 공주라는 말을 하자 공주들은 디즈니의 고전적인 클리셰들을 읊기 시작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대사는 "사람들이 강한 남자 한 명 나타났다고 네 문제가 전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니(Do people assume all your problems got solved because a big strong man showed up?)?"라는 대사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숱하게 사용되었던, 왕자가 공주를 구원하는 남성 구원자 서사를 공주들의 입을 빌려 언급함으로써 디즈니가 자기비판을 행하는 것이다. 바넬로피가 슈가 러시를 떠나 슬로터 레이스로 가면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영화의 결말과 연결하면, 디즈니의 공주들은 더 이상 운명을 바꿔줄 남자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의 디즈니 공주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바넬로피와 같을 것임을 선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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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좋은 영화인가

여기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가 좋은 영화인지 논하는 것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디즈니 공주 중에서도 대표적인 효자 캐릭터인 엘사와 신데렐라의 비중이 왜 다른 공주들보다 크냐는 비판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잠깐 이 이야기부터 하고 넘어가자. 필자는 이 비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는 공주들에게 최대한 공평하게 비중을 할당하려고 노력했다. 공주들의 능력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비인기 캐릭터인 메리다에게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캐릭터 배경을 활용한 유머와 "쟤는 다른 스튜디오에서 온 애야(She's from the other studio.)."라는 유머까지 할당했다(<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픽사 제작). 공주들 간의 비중 차이는 고작 해야 몇 초 정도밖에 나지 않는데, 인기 캐릭터와 비인기 캐릭터의 차별로 보기에는 이 차이가 유의미해보이지 않는다. 설령 차이가 유의미하다 하더라도 이를 인종차별과 연관 짓기는 쉽지 않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필자는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이 영화 전반의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되어선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런 입장에서 필자는 이 영화에 절대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영화는 바넬로피의 자아실현 서사를 위해 너무 많은 캐릭터를 소모하고, 심지어는 바넬로피마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오락실에 운전대가 제대로 배송이 되어 슈가 러시가 복구되었는지, 그래서 동료들이 다시 보금자리를 찾았는지 확인도 안된 상황에서 바넬로피는 슈가 러시에는 자신 말고도 15명의 레이서가 더 있다며 미련 없이 슬로터 레이스로 떠나버린다. 슈가 러시의 위기를 유발한 책임이 바넬로피에게도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매우 대책 없고 비양심적인 결정이다.

애초에 전편 <주먹왕 랄프>는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영화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기엔 매우 드림웍스적이었고, 반(反)디즈니적인 영화였다. 게임에서 악당 역할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소외되었던 아웃사이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드림웍스가 만들 법한 영화 아닌가. 그런데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아웃사이더여서 의미 있었던 랄프를 다시 소외시킨다. 전편의 랄프는 조금 모자라긴 했어도 바넬로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게임에 바이러스를 풀어놓는 수준의 우둔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리고 영화는 바넬로피의 자아실현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랄프를 마치 바넬로피를 구속하는 캐릭터처럼 보이게 하고, 디즈니의 변화 선언을 위해 랄프에게 역으로 코르셋(드레스)을 씌움으로써 그를 희화화한다(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공주들은 집에서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도 디즈니 공주들이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편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웃사이더의 인격적 성장을 그렸던 시리즈가 도리어 다시 아웃사이더를 몰아내니 괘씸할 따름이다.

결정적으로 오 마이 디즈니 시퀀스가 영화 전체에서 붕 뜨는 듯한 인상이다. 오 마이 디즈니 시퀀스에 등장하는 디즈니 공주들, 베이비 그루트, 아이언맨, 버즈, 닉, 스톰트루퍼 등의 캐릭터는 영화에 조금의 기여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카메오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과시적이다. 따라서 이 시퀀스 자체가 디즈니의 방대한 IP(지적 재산) 자랑 같아보이는데, IP 자랑은 관객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하는 것이다.

나오지 말았어야 할 속편이다. 속편들이 범하는 잘못 중 최악은 전편의 궤적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주먹왕 랄프>에서 자신의 게임이 철거되자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 질서를 어지럽혔던 악역 터보의 행동을 랄프와 바넬로피가 그대로 재현하고, 아웃사이더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지운 채 랄프의 앞에 경계선을 긋는다. 디즈니 공주들을 통한 디즈니의 변화 선언도 가장 디즈니 애니메이션 같지 않았던 이 시리즈에서 하기에 부적합했다. 결국 앞서 기술한,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을 다루는 데 급급해 완성도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례에 한 편이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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