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
· 2.5

장난감에서 아케이드 게임으로 소재가 변하며, 다양한 레퍼런스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게임 속의 세상을 구현하고 재미있는 모험담을 펼친 '주먹왕 랄프'는 디즈니의 '토이 스토리'와도 같았다. '주먹왕 랄프 2'는 랄프와 바넬로피를 인터넷의 세상으로 데리고 가며, 비디오 게임의 세상이 아닌 온라인 세계로 확장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2편은 1편에 비해 아쉽다의 수준이라 진심으로 실망스러웠다
우선 인터넷과 비디오 게임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비디오 게임 문화는 80년대부터의 나름 깊은 역사가 있다. 1편의 감독이자 2편의 공동 감독인 리치 무어는 63년생으로, 비디오 게임의 태동기를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게임에 대한 이해가 바탕됐기에, 그리고 그 이후의 비디오 게임의 진화도 지켜볼 수 있었기에 '주먹왕 랄프'의 세계는 굉장히 몰입감이 있으며 감성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급성장했다. 비디오 게임과 인터넷, 모두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문화인데, 감독은 전자에 대한 경험은 있을지 언정, 과연 후자에 대한 이해가 깊었을까? '주먹왕 랄프 2'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인터넷에 대한 굉장히 피상적인 이해가 바탕으로 돼있는 듯하다. 1편에서는 글리치라는 비디오 게임의 유명한 특성을 스토리 요소로 굉장히 영리하게 이용한다. 글리치와 그에 대한 경험이 바탕이 돼있기 때문에 그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편에서는 밈과 밈을 대충 섞으면 무조건 성공적인 바이럴 비디오가 된다는 너무 단순한 발상부터 온라인 비디오의 수익 창출 방법과 바이러스에 대한 이상한 논리로 스토리를 짠다. 물론 충분히 상상 가능이야 하지만, 1편에서 보여준 소재에 대한 깊이가 2편에는 없다는 점이 제일 실망적인 점이었다.
제작진이 이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고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상은 수많은 레퍼런스와 유머의 남발이다. '이모티 더 무비'가 바로 이 실수를 아주 거하게 저질렀었다. 두 영화 모두 사람들이 알만한 로고들과 온라인 사이트들을 전시만 하고 끝내버리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리고 이 사이트들에 대한 이해도, 다시 말하지면, 너무 피상적이다. 수많은 유튜브 인기 컨텐츠들 중에서 유난히 고양이에만 집착하는 유머가 대표적이다. 그나마 이 영화가 나은 점은 그 와중에도 이런 씬들을 통해 랄프와 바넬로피의 우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화가 흐름이 매끈한 서사가 아니라, 각본가들이 막 던진 레퍼런스 유머 아이디어들을 대충 이어붙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 결과, 2편은 기승전결을 따라 감정선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영화 내내 웃기려고 하다 클라이맥스 시간이 되니 갑자기 갈등 전개부터 해소까지 급하게 처리해 버리는 어설픈 페이스로 꼬여버리는 참사가 일어난다. 물론 1편도 소닉이나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레퍼런스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그저 이야기를 조금 더 재미있게 해줄 조미료 같은 역할이었을 뿐, 메인 스토리에 대한 기여도는 낮았고, 이야기는 철저히 랄프의 모험에 집중했다. 즉, 레퍼런스가 많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얕은 지식을 토대로 한 레퍼런스만으로 스토리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아쉬울 뿐이다. 메타유머를 위한 배경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 영화 내 디즈니 공주 씬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예고편에서도 일부 나온 디즈니 공주들과 관련된 유머는 정말 이들에 대한 이해가 빠삭한 사람이 영리하게 짠 대사들로 정말 재미있고 참신한 코미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디즈니 공주는 이 영화에서 인터넷과 독립적인 몇 안되는 소재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장점으로 주제를 돌리자면, 이 영화가 묘사한 인터넷 세계는 정말 매혹적이다. 현대~근미래적인 메갈로폴리스처럼 묘사된 인터넷에서 사이트의 특성들을 반영한 개성 넘치는 디자인들과 인터넷 내의 다양한 구역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언제나 꽉 차 보이지만 너무 산만하지도 않았다.
성우들도 굉장히 좋았다. 우선, 존 C 라일리는 호감적이고 우직한 랄프 캐릭터를 잘 살렸다. 하지만 역시나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라 실버맨의 바넬로피였다. 특유의 목소리와 바넬로피의 디자인이 합쳐지며 귀여움과 터프함이 공존하는 매력 터지는 주인공을 제대로 연기하며, 정말 이 캐릭터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성우가 됐다. 그 외에 타라지 P 핸슨과 갤 가돗의 목소리 연기도 아주 훌륭했으며, 각자 개성 넘치는 조연으로서 주연들을 잘 보조했다.
'주먹왕 랄프 2'는 디즈니 제국의 힘과 성우와 제작진의 탄탄한 기본기가 어느 정도 버텨주긴 하나, 결국 이야기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영화 도중에 진지하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이후에 있을 '주먹왕 랄프' 시리즈와 디즈니가 계획 중인 다른 애니메이션 속편들에 대한 내 신뢰에도 금이 갔다.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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