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4.0

원작을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빛나는 김지운 감독의 재해석

여름 극장가 최고 성수기를 맞아 한국 영화 빅3중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먼저 보았습니다. 원작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흥미로운 관점들이 많았고, 애니메이션과는 결말의 차이가 있습니다.

강화복, 빨간 망토, MG42(기관총), 권력기관의 알력 다툼이란 전체적인 뼈대는 유지하되 인물들의 감정선을 넣어 재해석한 부분이 특징입니다. 미친 비주얼과 액션으로 보여는 맛과 즐기는 맛, 묵직한 세계관도 얻어 가는 종합선물세트 같았습니다. SF 적 요소의 큰 틀에 로맨스와 나아가서는 인류애(愛), 액션, 느와르의 스타일을 갖춘 한국 영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원작은 2차 세계대전 후 패망한 일본을 무대로 하지만 영화는 2029년 근미래로 설정, 통일준비기간의 어수선한 대한민국입니다. 강대국의 경제 제재로 민생 악화와 지옥 같은 이념 싸움이 계속되는 혼란의 시대.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단체 섹트의 등장과 함께 이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 조직 '특기대'가 임무수행 중 무고한 소녀들을 살해하며 특기대의 신뢰도 떨어진 상태인데요. 이를 노리고 치고 올라오려는 정보기관 '공안부'와 여전히 은밀한 활동을 벌이는 '섹트' 사이에서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이란 이름의 정예부대가 존립하게 됩니다.

<인랑>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지만 문명의 발달이 아닌 퇴보한 듯한 레트로, 아날로그, 디스토피아적 이미지가 주를 이룹니다. 2029년은 통일을 준비하며 내수경제만 허용된 경제 후퇴 시대기 때문에 불만과 혼돈의 상황이며, 등장인물의 스타일 또한 모노톤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그려집니다.

어둡고 빛바랜, 안개 자욱한 상황 속 오롯이 가시 돋친 장미 같은 존재가 바로 '이윤희(한효주)'입니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섹트의 운반책 '빨간 망토 소녀(신은수)'또한 빨간 옷을 입고 있죠. <인랑>에서는 복고적인 버건디 스타일과 섹트, 인랑, 공안부의 블랙 계열 스타일이 화려함과 절제미의 인상적인 미장센을 구현했습니다.

특히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빨간 망토'는 여러 버전 중에서 가장 섹슈얼리티하고 원색적인 프랑스판 잔혹동화를 차용했는데요. 이윤희(한효주)는 빨간 망토이고 무서운 늑대는 인랑 임중경(강동원)을 상징합니다.



"우린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야."


거대 세트장이라는 미로 같은 지하 수로에 공을 들였다는 김지운 감독은 '각자 처한 현재적 의미에서 태생적인, 존재론적인 것들을 암시하는 중요한 공간이다'라며, 강화복에 공들인 사연도 털어놓았습니다. 인랑이라 불리는 특수 정예요원은 사람 인(人), 이리 랑(狼) 뜻을 가진 늑대인간으로 원작의 오마주이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공들인 티가 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인랑>은 장르를 넘나드는 감각적 스타일과 미장센,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메시지와 개인과 집단의 대립 속 희망을 발견하는 사랑의 가치, 무엇보다 관객에게 다양한 공론을 환기 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시도를 이룬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집단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세상의 모든 개인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엔딩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 <인랑> 김지운 감독 GV 정리 , 그리고 배우 정우성 깜짝 등장


Q) 차기작으로 <인랑>을 선택한 이유는?

김지운: 평소 <이나중 탁구부>,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사실 <아키라>를 제안받았는데, 전 감독이 이미 200억의 제작비를 쓰고 중단한 터라 실사화에 한계를 느껴 고사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인랑'은 오마주이면서 재해석이다. 지하수로, 빨간 망토, MG42 등은 그대도 유지했다. 그리고 원작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 중에 ost 'Grace Omega'도 그대로 선택했다. 이는 <인랑>애니메이션의 감독 '오키우라 히로유키'의 아내인 'Kanno Yoko'가 불렀다.

Q) 원작보다 확장된 이야기에 주안점을 둔 것은?

A) 원작은 굉장히 건조하다. 감정이 없는 초월한 사람들 같다. 애니메이션을 실사 배우가 그대로 한다고 해도 사람인지라 감정선이 생기더라. 관계에서 오는 인물들 간의 감정적 갈래(분노, 애정, 애증 등) 원작보다 감성에 풍부하게 치중했다. 허무주의 세대인 '오시이 마모루'의 특징과 모호한 부분을 대중적 기법과 한국적 상황을 더해 과감히 삭제하고 재해석했다.


Q) 결말이 완전히 다르다. 이유는 뭔가?

A) 영화는 극도의 혼란기, 야만의 시대다. 누가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뭘까, 사랑이 아닐까란 생각에 도달했고. 개인과 집단, 성장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은 집단을 대표한다. 한상우는 공안국, 이윤희는 섹트, 장진태는 특기대를 의미하며 개인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집단성을 띈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사회 같으나 새로운 형태의 집단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가 결정되는 현상에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Q) 빨간 망토는 원작에서도 큰 모티브로 작용한다. 김지운 감독은 어떻게 해석했나?

A) 동화처럼 관계를 암시한다. 이윤희와 임중경이 동화 이야기를 할때 가장 로맨틱하다. 감정을 환기시킨다. 짐승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Q) 남산타워의 장면 빼고 CG가 거의 쓰이지 않을 것 같다.

A) 그렇다. 남산 전망대는 CG를 사용했고, 거의 실사다. 지하 거대 수로는 사실 만든 세트다. 원작에서도 중요한 장소다. 꼭 재현해 보고 싶었다. 너무 단순해 보여 미로처럼 복잡하게 구성했다. 남산타워 장면은 물론 로맨틱함 때문이다. 서울의 중심, 랜드마크기도 하고 탈출할 수 없는 악조건의 장소라 고심하다 선택하였다. 무모한 도전, 관계 역전을 표현하기도 한다.

Q) 부감 숏이 유난히 많더라, 의도된 건가?

A)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신, 벽을 뚫는 장면 등 주제를 암시하는 잠재된 무의식이다. 내 영화는 거의 느와르 같다. 콘트라스트(명암), 추락 테마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Q) 최근 남북의 화해모드를 알고 작업한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시대상이 반영되었다.

A) 촬영을 마치고 편집하던 중 통일 이슈가 보이더라. 각색 작업 중 시대 고민이 많았는데, 스팀펑크(대안 역사)로 만들면 너무 영화적일 것 같아서 근미래로 설정했다. 현재 불안한 징후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인 '통일 이슈'를 넣었고, 원작에서 보여준 권력기관의 세력 다툼이 각색 과정에서 '통일'일 것이라 판단했다. 내가 생각하는 SF란 현재 징후의 과장, 극단화를 통해 현재를 환기해보자는 의미가 크다.



Q) 한효주 배우가 들고 있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어떤 의미인가?

A) 어려운 책이나 평소 '수잔 손택'을 좋아한다.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과 재앙을 고발하고 전쟁을 다루고 있다. 영화와는 내용이 다르나 서로를 속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책을 들고 있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다.

Q) 원작의 강화복의 재현, 비주얼적인 묘사는 어떠했나?

A) 강화복과 미술에 굉장히 공들였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레트로적 SF를 차용했다. 강화복은 최소 20~-30kg 정도 나가고 풀장착하면 40kg 정도인데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슈트는 <로보캅>, <아이언맨>의 수트를 제작한 팀의 작품이다. 너무 가벼우면 묵직함이 덜해 가볍게 만들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돈을 더 내면 가볍게도 만들어 준다고 함, 일동 웃음)



Q) 정우성 배우에게 묻는다. 강화복 입고 촬영하지 힘들지 않았나?


A) 물론 힘들었다. 내가 연기한 장진태는 기성세대와 집단을 대표한다. 평화통일 대의를 향한 폭력은 과연 정당한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소모되는 개인의 희생에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반명 임중경은 세대교체와 개인을 상징한다.

Q) 영화에서 작살을 분명 맞았는데, 태연히 잘도 걷더라 어떻게 된 건가?

A) (웃음) 사실 찍어 놓고 편집한 장면인데 DVD에는 꼭 넣겠다. 모르핀을 맞는 장면이 삭제되었는데. 인간병기의 캐릭터와 영화의 액션 탄력성이 떨어져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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